인도산 고추와 한국의 야 3당(이승원)
- Posted at 2009/05/26 14:36
- Filed under 정치-사회비평
인도산 고추와 한국의 야3당
이승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원위원)
인도산 부트 졸로키아 고추
얼마 전 직장 일로 동남아 국가의 한 수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체류 마지막 날 지역단체의 초청으로 조촐한 저녁식사가 마련되었다. 식사 중 반찬으로 매운 고추로 만든 양념장과 식초에 저린 고추가 추가로 제공되었다. 각 국의 참석자들은 저마다 매운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양념장과 저린 고추를 즐겼고, 나도 “한국 사람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라는 말과 함께 저린 고추를 한 입 물었다. 헉! 내가 매운 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도 그랬지만, 역시 햇볕 강한 나라에서 재배된 고추라 그 매운 맛이 우리의 청양고추가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놨다. 타는 혀에도 불구하고 표정이야 어떻게든 감출 수 있었지만, 이미 벌겋게 상기된 눈 주위와 볼은 함께 한 참석자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할 수 밖에 없었다.
고추 하나로 웃고 즐기는 동안, 내 곁의 파키스탄 학자 한 분이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모든 사람들이 고추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달리 잘살지 않으면 매운 고추를 잘 먹지를 못하는데 그 이유를 아느냐는 것이다. 출장던 방영된 ‘스파이스 루트’라는 향신료 관련 MBC 다큐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인도산 ‘부트 졸로키아’로 그 매운 맛이 우리 청양고추의 10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인도 등 남아시아인들은 우리가 고추장을 먹듯 고추, 후추, 식초, 새우젓갈 등을 섞은 ‘삼발’이라는 소스를 일상에서 즐긴다고 한다. 당일 저녁 저린 고추와 함께 우리가 맛본 양념장이 바로 ‘삼발’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식 때문에 우리가 파키스탄 학자의 질문에 당황하며 답을 말하지 못할 때, 그 분은 웃으며 짧게 답을 이야기 해주었다.
“물 때문입니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아시아, 특히 남아시아에서 식수는 대단히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물을 과소비하게 되는 고추를 식수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즐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왜 그 답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남아시아의 서민들에게 지천에 깔린 고추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식수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어디 고추뿐이고, 그것이 어디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일이겠는가. 짧은 여정 속에서 가장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고추가 되버린 민주주의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만큼이나 이젠 생활화된 언어이다.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를 떠나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찾기가 힘들다. 그것이 법의 형태이든, 관습의 형태이든, 혹은 가치와 의식의 형태이든 간에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자기 것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외칠수록 조갈(燥渴)을 더 느끼고 해갈(解渴)을 갈망한다. 마치 고추를 먹으면 먹을수록 물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점점 민주주의는 사치스러운 향신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적 제 권리를 찾기 위해 저항을 하고, 호소를 하지만, 이제 그 저항과 호소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하루일당보다 못한 것이 되어 버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일상의 노동을 투쟁과 정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현실에서 하루 종일의 고단한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의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또 다시 거리의 정치에 자신의 육체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차라리 노동과 정치의 투잡(Two jobs)을 뛰는 사람이야 일자리와 삶의 공간에서 내쫓겨 일당조차 포기한 채 설움 반 분노 반으로 ‘투쟁’을 해야 하는 이들에 비하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생명의 물’인줄 알았고, 민주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 희망을 품었던 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점차 매운 고추가 되고 있다. 그 소중했던 민주주의가 이젠 너무 힘들다.
지난 4월 말 보권선거 이후 승리로 환호한 정치세력들은 일면 황홀경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의 이명박 정권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가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은 저마다 선거승리 이후 反이명박 전선의 중심이자 향후 대안적 집권세력이 될 수 있다는 황홀경 속에서 현재의 반민주․반서민적 장벽을 깨기 위해 ‘단결’과 ‘연대’를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서민들의 ‘조갈’을 ‘해갈’할 수 있는, 최소한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아리수’급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타른 목마름’을 해결하는 물과 같았던 민주주의를 매운 고추로 만들어버린 ‘조갈’의 원인제공자들이라는 것은 반성하고 있지 못하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신자유주의적 결과물’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또한 2004년 국민들이 만들어준 성과를 분열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서로를 성토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정당’과 ‘선거’라는 향신료로 만들어버린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수식어가 붙은 야3당의 역할
당장 다음 달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정국이 긴장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의 무서움은 7월부터 노동시장 대란을 불러일으킬 비정규직 악법의 개악에 숨어잇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이 국민들이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 개악에 분노하여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오기를 손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국민을, 서민을, 약자를 위하는 정치세력이라면 제2의 촛불을 기다리거나 기대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상큼한 일자리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그들을 지지한 것이고, 지난 보궐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준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삶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야3당(여기서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 굳이 할 일이 아니다. 야3당은 국민들이 거리투쟁이 아니라 다가오는 여름부터 일자리와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 ‘노동’,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야3당은 새로운 연대의 전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조갈(燥渴)의 향신료가 아닌 해갈(解渴)의 식수(食水)로 다시 바꿔야 한다. 자신들의 게으름 혹은 차이로 인해 그 전형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결과는 생각보다 무섭다. 청계천과 ‘아리수’ 이상으로 4대강 정비사업은 국민들에게 해갈을 가장한 독수(毒水)로 퍼질 것이다. 국민들은 독수인지 생수인지 구별할 정신이 없을 정도로 삶이 힘들고 목이 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연대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해갈을 위한 희망의 시작일 것이다.
Posted by 지행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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