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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산 고추와 한국의 야3당


이승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원위원)


인도산 부트 졸로키아 고추


얼마 전 직장 일로 동남아 국가의 한 수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체류 마지막 날 지역단체의 초청으로 조촐한 저녁식사가 마련되었다. 식사 중 반찬으로 매운 고추로 만든 양념장과 식초에 저린 고추가 추가로 제공되었다. 각 국의 참석자들은 저마다 매운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양념장과 저린 고추를 즐겼고, 나도 “한국 사람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라는 말과 함께 저린 고추를 한 입 물었다. 헉! 내가 매운 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도 그랬지만, 역시 햇볕 강한 나라에서 재배된 고추라 그 매운 맛이 우리의 청양고추가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놨다. 타는 혀에도 불구하고 표정이야 어떻게든 감출 수 있었지만, 이미 벌겋게 상기된 눈 주위와 볼은 함께 한 참석자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할 수 밖에 없었다.


고추 하나로 웃고 즐기는 동안, 내 곁의 파키스탄 학자 한 분이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모든 사람들이 고추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달리 잘살지 않으면 매운 고추를 잘 먹지를 못하는데 그 이유를 아느냐는 것이다. 출장던 방영된 ‘스파이스 루트’라는 향신료 관련 MBC 다큐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인도산 ‘부트 졸로키아’로 그 매운 맛이 우리 청양고추의 100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인도 등 남아시아인들은 우리가 고추장을 먹듯 고추, 후추, 식초, 새우젓갈 등을 섞은 ‘삼발’이라는 소스를 일상에서 즐긴다고 한다. 당일 저녁 저린 고추와 함께 우리가 맛본 양념장이 바로 ‘삼발’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식 때문에 우리가 파키스탄 학자의 질문에 당황하며 답을 말하지 못할 때, 그 분은 웃으며 짧게 답을 이야기 해주었다.


“물 때문입니다.”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아시아, 특히 남아시아에서 식수는 대단히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물을 과소비하게 되는 고추를 식수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즐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왜 그 답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남아시아의 서민들에게 지천에 깔린 고추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식수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어디 고추뿐이고, 그것이 어디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일이겠는가. 짧은 여정 속에서 가장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고추가 되버린 민주주의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만큼이나 이젠 생활화된 언어이다.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를 떠나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찾기가 힘들다. 그것이 법의 형태이든, 관습의 형태이든, 혹은 가치와 의식의 형태이든 간에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자기 것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외칠수록 조갈(燥渴)을 더 느끼고 해갈(解渴)을 갈망한다. 마치 고추를 먹으면 먹을수록 물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점점 민주주의는 사치스러운 향신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적 제 권리를 찾기 위해 저항을 하고, 호소를 하지만, 이제 그 저항과 호소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하루일당보다 못한 것이 되어 버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일상의 노동을 투쟁과 정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현실에서 하루 종일의 고단한 노동에 지친 사람들이 자신의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또 다시 거리의 정치에 자신의 육체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차라리 노동과 정치의 투잡(Two jobs)을 뛰는 사람이야 일자리와 삶의 공간에서 내쫓겨 일당조차 포기한 채 설움 반 분노 반으로 ‘투쟁’을 해야 하는 이들에 비하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생명의 물’인줄 알았고, 민주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 희망을 품었던 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점차 매운 고추가 되고 있다. 그 소중했던 민주주의가 이젠 너무 힘들다.


지난 4월 말 보권선거 이후 승리로 환호한 정치세력들은 일면 황홀경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의 이명박 정권이라면 자다가도 이를 가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은 저마다 선거승리 이후 反이명박 전선의 중심이자 향후 대안적 집권세력이 될 수 있다는 황홀경 속에서 현재의 반민주․반서민적 장벽을 깨기 위해 ‘단결’과 ‘연대’를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서민들의 ‘조갈’을 ‘해갈’할 수 있는, 최소한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아리수’급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타른 목마름’을 해결하는 물과 같았던 민주주의를 매운 고추로 만들어버린 ‘조갈’의 원인제공자들이라는 것은 반성하고 있지 못하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신자유주의적 결과물’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또한 2004년 국민들이 만들어준 성과를 분열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서로를 성토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정당’과 ‘선거’라는 향신료로 만들어버린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수식어가 붙은 야3당의 역할


당장 다음 달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면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정국이 긴장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의 무서움은 7월부터 노동시장 대란을 불러일으킬 비정규직 악법의 개악에 숨어잇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이 국민들이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 개악에 분노하여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오기를 손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국민을, 서민을, 약자를 위하는 정치세력이라면 제2의 촛불을 기다리거나 기대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상큼한 일자리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그들을 지지한 것이고, 지난 보궐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준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삶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야3당(여기서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 굳이 할 일이 아니다. 야3당은 국민들이 거리투쟁이 아니라 다가오는 여름부터 일자리와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 ‘노동’,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야3당은 새로운 연대의 전형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조갈(燥渴)의 향신료가 아닌 해갈(解渴)의 식수(食水)로 다시 바꿔야 한다. 자신들의 게으름 혹은 차이로 인해 그 전형과 변화가 실패한다면, 결과는 생각보다 무섭다. 청계천과 ‘아리수’ 이상으로 4대강 정비사업은 국민들에게 해갈을 가장한 독수(毒水)로 퍼질 것이다. 국민들은 독수인지 생수인지 구별할 정신이 없을 정도로 삶이 힘들고 목이 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연대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해갈을 위한 희망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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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의 승자와 패자



이 영 제(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이명박 정권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유권자들이 4·29 재·보궐 선거에서 “총탄대신 투표로” 5대0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로 평가하고 있는 이번 선거의 결과가 경제부흥에 열광했던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들의 이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지난 대선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무당파를 형성했던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복귀한 것인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5대0’이라는 명확한 결과와 다르게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주의 2개 선거구는 애초부터 한나라당과 관계없는 지역정당의 집안싸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고 경주에서의 선거도 소위 ‘친이’와 ‘친박’이라는 한 지붕 두 가족의 자존심 싸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현 정권 또는 집권 여당에 대한 평가와는 거리가 있는 3곳을 제외하면,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부평과 울산 2곳에 불과하다.


 진보정치 1번지로 불렸던 울산에서는 ‘분열 당한 민주노동당’과 ‘분화한 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치열한 샅바싸움과 진보정당과 보수정당간이 경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예선에서 조승수 전의원과 진보신당을 심판하는데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분열은 잘못이며, 다시 통합을 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진보신당은 원외전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로써 조승수 전 의원의 당선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특히 민주노동당에게 분열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조승수 전 의원은 진보신당에게는 분화의 상징적 존재라는 점에서 후보 단일화 과정은 보수정당과의 경쟁보다 치열했다. 선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아쉽게도 양자의 승부는 뒤로 미루어 졌다. 결과적으로 진보신당은 원내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진보정당 원내진출 5년 만에 복수 진보정당 시대를 열었다.


 울산에서의 승리로 유일 진보정당으로서의 위상을 찾고자 했던 기획은 실패했지만 민주노동당은 호남에서 울산에서의 승리 이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민주당을 여유있게 누르고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호남에서의 지속적인 선전은 민주당을 대체할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확보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것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5곳의 선거구 중 부평 1곳에서만 자당의 후보를 당선시켰다. 문제는 친MB후보로도 손색이 없는 FTA의 첨병을 소위 ‘반MB 후보’로 공천함으로써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정서를 희화화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반MB연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민주노동당이 가장 중요한 선거구로 꼽혔던 부평에서 단일화를 거부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반MB연대’의 최대 수혜자로서 민주당의 위상을 스스로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당에게 보다 뼈아픈 것은 호남이라는 텃밭에서 진행된 광역의원선거와 기초의원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호남에서의 민주당에 대한 지지철회가 민주노동당 및 무소속의 선전으로 외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특이한 것은 향후 선거까지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형성하려 했던 소위 ‘반MB 연대’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과 같이 야권과 시민사회진영이 일찌감치 추진해 온 ‘반 MB연대’는 이번 재보궐 선거에 어떠한 성과도 내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체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부평에서 전 한미FTA국내대책본부장을 지낸 후보가 민주당에서 공천되었고, 울산에서는 ‘분열당한 민노당’과 ‘분화한 진보신당’의 샅바싸움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MB 진영’에서 이와 관련된 제대로 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반MB연대를 추진했던 세력들의 ‘이율배반적’ 침묵과 소극적 대응은 비판적 지지의 연장선에 있는 ‘반MB연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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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09/05/29 23:55 # M/D Reply Permalink

    진짜 여기 글들 너무 뻔하다..솔직히 이 정도 수준은 좀 똑똑한 좌파 학부생도 다 쓰는거자너. 이럴거면 뭐하러 대안지식 어쩌고 이름 달았는지 모르겠다. 댓글도 없고 rss에서도 이제 지워야지..

    1. 대마왕 2009/06/02 15:11 # M/D Permalink

      그렇죠? 사람들이 좀 친절하지 못해요. 이름은 그렇게 해보겠다고 지은 거니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rss에서 지웠음 이 댓글은 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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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거역하는 정부(하승우)

민심을 거역하는 정부


하승우(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얼마 전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예상대로 한나라당의 패배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1명, 진보신당 1명, 무소속 후보 3명이 당선되었고, 경기도 시흥시장도 민주당 후보가 차지했다.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서울시 광진구에서 한나라당 후보 1명이 시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제외하면 강원도에서 무소속 후보가, 전라남도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구시군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1석도 얻지 못했고 민주당이 2석, 민주노동당이 1석, 무소속이 2석을 차지했다.

그 전에 치러진 경기도 교육감 선거까지 고려한다면 집권 여당의 완전한 패배라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약 1년이 지난 뒤에 치러졌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그동안의 정부정책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거 결과만 보면 민심은 이명박 정부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그 점은 계속 떨어지던 투표율이 올라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왜 투표에 환멸을 느끼던 유권자들이 의식적으로 투표소를 찾았을까? 투표에 참가하지 않으면 이미 조직화된 표를 가진 여당 후보가 당선될 터이니, 이를 막기 위해 유권자들이 의식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정치에 대한 환멸이 참여의 관심으로 변한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걸까? 한나라당이 참패를 했으니 정치의 희망이 생긴 걸까?

작년 초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난 뒤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촛불의 실패 또는 패배’를 얘기했다. 제도정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촛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과 촛불의 목소리가 선거로 이어졌으니 이제 진보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걸까?

오히려 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는 지난 노동절 집회와 촛불 1주년 기념집회를 무참히 짓밟았다.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221명이 연행되었고, 용산철거민대책회의가 용산에 설치했던 천막도 기습 철거되었다. 선거결과로 드러난 민심에도 이명박 정부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더욱더 철저히 탄압하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 2일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한 대국민담화문은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 푼의 관광수입도 아쉬운 때입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실낱같으나마 도처에서 경제의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 폭력시위로 국력을 낭비할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우리는 지난해 무분별한 시위로 많은 국력을 낭비했습니다. 값비싼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올해에도 이러한 상황이 재발된다면 정부는 부득이 법에 따라 단호히 조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푼의 관광수입도 아쉬우니 시위를 벌이지 말라는 논리가 참으로 터무니없지만, 실제로 연행된 사람들은 48시간을 꼬박 갇혀 있다 석방되었으니 단호한 법의 집행이라 하겠다. 앞으로 정부는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목소리를,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민심을 폭력이라 규정하고 탄압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는 지역토호의 중심세력인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한국자유총연맹과 손을 잡고 ‘3대 신국민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정부는 민심을 따르기는커녕 자신이 민심을 만들고 조작하겠다는 강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점은 과거와 달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국민담화문에 동참했다는 점에서도 그러난다. 왜냐하면 개정될 통신비밀보호법이나 저작권법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사이버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사이버 민심’을 조작할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와 기득권층은 아예 민심이 형성될 수 있는 장을 없애고 과거처럼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미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 및 시위의 자유 등 시민의 온갖 기본권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이런 흐름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비극은 민심을 거역하는 정부가 이명박 정부만의 특징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장악한 정부는 언제나 민심을 거역하고 민심을 억누르고 조작해 왔다. 그리고 좌/우를 떠나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그런 과정에 동참하며 이득을 누려왔다. 언제나 민심은 민중의 가슴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통계수치나 지식인들의 전문용어,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으로만 드러나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거의 정부보다 조금 더 노골적일 뿐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이런 흐름을 계속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재보궐 선거에서 몇 번을 패배해도 3년 반 뒤의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보다 박근혜라는 보수정치인에 대한 지지로 전환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즉 한국의 기득권층은 대표선수만 바꾸면 이권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 민심 따위가 어찌 무섭겠는가?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는 이런 분위기를 바꾸고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중의 가슴에서 민심을 끌어낼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촛불 1주년을 기념하는 많은 자리에서도 나는 그런 대안들을 잘 찾을 수 없었다. 진보의 위기는 바로 그 점에 있고, 그런 점에서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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