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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知行네트워크</title>
		<link>http://jihaeng.net/blog/</link>
		<description>침묵하는 지식이 아닌 행동하는 지식을 꿈꾸는 사람들의 대안연구공간 : 知行네트워크</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06 Nov 2008 14:38: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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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업적 성공이 문학적 완성을  보증하는가(오창은)</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8</link>
			<description>&lt;DIV&gt;&lt;FONT size=2&gt;* 편집자주: 문학은 정치-사회적 상황에 &#039;연루&#039;되어있는 우리네 삶 내면에 대한 조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가 지양해야하거나 지향해야하는 가치와 규범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문학이 정치사회비평의 주요한 이야기꺼리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이번 정치사회비평은 문학이 &#039;부끄러움을 비추는 거울&#039;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건국 60년, 한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어오며 -황석영 작가만이 아니라-저마다 대견스러운 삶의 이력을 일구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은 또한 부끄러움을 잃어왔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논리로, 허구적인 수구-개혁과 보수-진보의 대립으로 &#039;누추한 인간의 군상&#039;을 만들어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새겨볼 일입니다. &amp;nbsp;정치의 위기, 경제의 위기가 거론되는 2008년 한국, 우리네 삶 내면의 부끄러움을 짚어보는 것 또한 위기극복을 위한 실천의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의 이 글이 그러한 실천을 위한 것으로 읽히기를 청합니다. 감사합니다. &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STRONG&gt;&lt;FONT size=3&gt;상업적 성공이 문학적 완성을 보증하는가?&lt;br /&gt;&lt;/FONT&gt;-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비판&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오창은&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lt;STRONG&gt;‘입석부근’과 황석영 신화&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1960년대 문학청년들에게 황석영과 최인호는 영웅이었다. 황석영은 1962년 고교생의 신분으로 &amp;lt;사상계&amp;gt; 신인문학상에 입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서울고 재학 중이던 최인호도 1963년에 &amp;lt;한국일보&amp;gt;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입선을 해 부러움을 샀다. 당시, 황석영은 황수영이라는 이름으로 「입석부근」을 투고해 가작을 받았는데, 경복고를 중퇴한 시점에서 수상이 결정되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새로운 문인의 탄생으로 일간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1950년대 후반에 문인 인구가 3백여명 정도였으니, 황석영과 같은 젊은 신예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신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눈여겨 볼 부분은 1962년 11월호 &amp;lt;사상계&amp;gt;에 발표된 신인상의 당선작이 서정인의 「후송」이었고, 공동가작이 박순녀의 「아이․러브․유」였다는 사실이다. 서정인과 박순녀는 1960․70년대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문인이다. 이렇게 입상작이 많게 된 이유에 대해 &amp;lt;사상계&amp;gt;는 ‘심사경위’에서 “금년에는 당선작 하나만 낼 것이 아니라 버리기 아까운 두 작품을 가작으로 하여 발표하자는데 심사위원들은 원만히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황석영은 개인적 고통의 근원을 찾기 위해, 사회적 고통으로 뛰어든 작가였다. 젊은 시절에 그는 자기 표현에 목말라하며, 등산의 여정에 빗대어 삶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이것이 「입석부근」(1962)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가출과 방랑생활의 편린들은 「삼포가는 길」(1973)과 「객지」(1971)에 흩뿌려져 있으며, 베트남전쟁에서 경험한 부조리한 상황과 ‘박정희 군대’의 어두운 역사는 「탑」(1970)과 「낙타누깔」(1972), 그리고 &amp;lt;무기의 그늘&amp;gt;(1988)에 고스란히 둥지를 틀고 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는 개인적인 길을 걸으며 시대의 길을 가늠했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끌어안아 문학으로 육화시킴으로써 ‘인간과 문학’의 관계를 밀착시켜 나갔다. 이제, ‘위대한 청년 황석영’이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과연 황석영은 삭정이 같은 노년의 스산함을 넘어 ‘세대와 공감하는 문학’을 구현해 낼 수 있을까? 그 실험대에 황석영의 신작 &amp;lt;개밥바라기별&amp;gt;(2008)이 놓여 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불을 삼킨 혀의 이야기&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1960년대 젊은 황석영의 ‘방황과 좌절, 그리고 영웅담’을 담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황석영의 청춘이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에 ‘회색의 바탕화면에 낭만적 색채를 가미한 채색화’로 그려지고 있다. 문청들의 질시와 기대 속에서 화려하게 성장했을 듯한 황석영의 이면에는 ‘아픈 청춘의 몸부림’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에 이르러 한국문학은 대중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학적 실천의 소임을 완수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대중성과 상업적 반향이라는 측면에서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성공한 작품이다. 하지만, ‘대중적 성공’이 ‘문학적 성공’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찬사로만 환호할 수 없는 소설적 약점을 곳곳에 노출시키고 있다. 따라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작품의 찬란한 후광을 뒤로 한 채 문학적 의미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절실하다. &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1960년대의 현실에 2000년대의 감각을 덧씌운 소설이다. 일종의 대중성을 의식한 전략적 글쓰기의 흔적이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소설은 연재될 당시의 매체환경부터 특이했다. 2008년 2월부터 5개월간 포탈사이트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했고, 그 연재의 의도 또한 문학과 대중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재되는 동안 하루 100～200개의 댓글이 달리고, 180만명의 네티즌이 블로그에 접속했다고도 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인터넷 연재라는 매체환경의 변화가 소설의 서사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문체는 의도적으로 단문으로 끊어 쓴 흔적이 역력하다. 모니터로 읽어야 하는 인터넷 환경에 맞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 변화이다. 게다가 소설의 전개도 끊임없는 사건의 연쇄를 중시하고, 성격화가 약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문학의 대표하는 작가라 할 지라도 인터넷 환경에서 글을 연재할 경우 기복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변화가 긍정적이지 않고, 소설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은 분명하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황석영은 ‘전혀 새로운 젊고 어린 독자들’을 위해 1960년대적 상황에 2000년대적 내면성을 입힘으로써, 쿨하면서도 낭만적인 색채만 강화했다. 시대의 풍경만 바뀌었을 뿐, 제도교육에 고통받는 ‘준과 인호의 상황’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편적이다. 사실, 이 보편성은 황석영이 1960년대적 상황을 약간 비틀어 놓음으로써 소설 속에서 얻어진 ‘만들어진 보편성’이기도 하다. 2000년대 젊은 독자를 위한 황석영의 대중적 배려가 1960년대의 시대적 풍경을 ‘내면적 주체의 갈등’으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바로 이 부분 때문에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표나게 ‘성장소설(Bildungsroman)’을 강조했다. 황석영은 1960년대와 2000년대 청(소)년들에게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자아의 내면 풍경’을 통해 ‘자유로운 영혼’은 어떻게 쟁취되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혹은 젊은 시절의 어두운 방황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의 긍정성을 발견해내려 했을 수도 있다. 소설 속 화자들은 1960년대와 갈등하거나, 좀더 극단적인 몇몇은 시대의 주류적 관점을 거부하고 일탈을 감행함으로써 자아를 찾으려 한다. &lt;/DIV&gt;
&lt;DIV&gt;&lt;br /&gt;이제는 좀더 나아가 냉정하게 황석영이 구현하려 했던 성장 소설이 어떤 성취에 가 닿았는가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의 문학적 실패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성장소설은 ‘자기안의 닫힌 세계관’ 때문에 ‘자기 밖의 억압적 세계’와 불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 불화가 화해를 향한 여정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자기 파멸이라는 매혹적인 결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준․인호․정수가 예술에 대한 열정 때문에 제도교육과 불화하는 이유는 ‘강한 자의식이나 자기애’ 때문이다. 성장소설의 서사는 강한 자아가 세계와 새롭게 관계 맺게 되는 과정을 ‘균열 - 대립 - 통합(조정)’ 순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극한적 대립 속에서 주체는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세계를 변화시키면서 ‘자아의 성장’을 이끌어낸다. 즉, 성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과 주체 밖 세계 사이의 조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소설은 회고담이 아니며, 내면에 대한 진술도 아니고, 역사에 관한 사실적 재현은 더더욱 아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성장소설과 자기 드러내기&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이 소설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10대들의 방황을 그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황석영이 겪었던 1960년대를 소설적으로 회고하는 ‘자기 드러내기’이다. 그런데도, 황석영 스스로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을 한국적 성장소설의 등장이라 주장한 바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2000년에 정리된 ‘황석영 연보’(&amp;lt;황석영 중단편전집&amp;gt;)와 거의 그대로 겹쳐지고 있으며, 황석영 자신도 준의 형상을 통해 “이 작품을 쓰면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나의 청춘시절을, 단편소설을 쓰던 때의 나를 비로소 되돌아볼 수 있었다”(285쪽)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소설의 서사가 정교하게 구상된 극적 요소에 의해 절제되기 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내맡겨진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성장소설은 시간의 흐름과 갈등하는 내면의 성장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연대기적 서술은 안이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베트남 파병을 앞둔 준의 회상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감싸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장황하게 이어지는 준․인호․정수의 무전 여행 등은 여정 보여주기에 급급해 낭만적 치기로 채색되어 있다. 이는 황석영이 자신의 과거와 거리두기에 실패해 ‘기억의 기록’에 급급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자기객관화에 실패한 ‘회고담’이 됨으로써, 자신의 삶에 대한 근원적 탐구에도 미치지 못하고 만 것이다. &amp;nbsp;&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게다가 이 소설에는 당혹스러운 해설자의 개입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설의 구성상으로는 ‘특박 나온 준’이 과거를 과장하는 서사의 주체여야 한다. 하지만, 소설 텍스트 속에는 노년의 황석영이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목소리가 곳곳에 등장한다. 예를 들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라진 내 젊은 날의 인생에 대한 예감이었을 것이다”(101쪽)라거나, 좀더 노골적으로는 “나는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밋밋하고 의미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175쪽)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 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다”(186쪽)라고 사후적으로 진술한다. 세 부분의 시간이 소설 속에 혼재함으로써, 독자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이러한 소설적 진술은 치명적 약점이다. 이는 황석영이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의 서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준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부분에서 유독 회상조의 정조가 강하게 드러나며, 작가의 직접적 해설도 준의 장에서만 빈번하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규칙’이 1970년에야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나두 학교 때려치우구 검정고시나 볼까봐”(163쪽)라는 대화가 등장하는 것은 작가의 불성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진술의 혼란은 소설 속 화자와 작가의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황석영이 『개밥바라기별』을 창작하면서 무의식 중에 자신의 1960년대와 준의 상황을 중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이 과거를 회고하는 작가의 자의식이 투영된 ‘기억의 서사’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작가의 준의 거리두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혼란이 발생해 소설의 미적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준에 비해 영길․인호․상진․정수․선이․미아는 조력자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아쉽기만 하다. 준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세계의 일부이면서 준의 일부이기도 하다. 준의 성장은 바로 이들로부터 촉발될 수 있고, 이들과의 성격적 갈등 속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인호․정수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사건에 대한 부가적 진술자이거나, 성격화가 덜 된 풍경적 인물로 제시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은 이야기성과 사건은 풍부하지만, 작품적 완성도는 떨어지는 작품으로 전락했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황석영의 ‘중박’과 문학상업주의&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황석영은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는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을 출간하면서 “외국에는 여러 작가들의 수많은 성장소설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문학사에는 단편소설 몇 편이 있을 정도다”(283쪽)라고 개탄했다. 이는 이 소설이 한국문학사에 남을 장편 성장소설이라고 스스로 웅변하는 것과 같다. 황석영의 진술은 한국문학사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윤흥길의 &amp;lt;장마&amp;gt;(1973), 김원일의 &amp;lt;노을&amp;gt;(1977), 이문열의 &amp;lt;젊은 날의 초상&amp;gt;(1981), 은희경의 &amp;lt;새의 선물&amp;gt;(1995), 현기영의 &amp;lt;지상의 숟가락 하나&amp;gt;(1999), 그리고 심윤경의 &amp;lt;나의 아름다운 정원&amp;gt;(2002) 등과 같은 장편 성장소설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과거를 부정하려는 무의식적 태도에서 공공연하게 읽을 수 있다. 스스로 기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역사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권력이 되고자 하는’ 감성의 소유자이기 쉽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더군다나 황석영은 회고담류의 이야기를 극적 긴장에 대한 고려도 없이 소설화해 ‘상업주의적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그는 ‘젊고 어린 독자들’과 소통한다는 명분 아래 ‘대중성에 포박된 작품’을 ‘문학적 성취’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나의 문학적 연대기의 새로운 표지석’이라는 이름표까지 달아 기념하려 하고 있다. 또한, 10만명을 넘어섰다는 판매량에 열광해 ‘중박’(문학성과 대중성의 중간, 대박에 못 미치는 중박)이라는 비루한 용어까지 만들어 자신감을 과도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대중적 성공이 문학적 성공을 보증하지 않는다. 앞에서 지적한 &amp;lt;개밥바라기별&amp;gt;의 소설적 약점은 황석영의 문학세계가 태작을 생산하는 노쇠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가론에 대한 주석서의 역할을 할 회고담류의 작품을 생산하게 되면, 그 작가의 창작적 역량은 고갈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조종(弔鐘)을 스스로 울리고 있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런 의미에서 &amp;lt;개밥바라기별&amp;gt;보다는 그의 등단작인 「입석부근」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입석부근」은 답답할 정도로 촘촘한 태도로 세계와 대결하며, 자아의 성장이 어떤 대결적 태도 속에서 쟁취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야성을 갈무리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청년 황석영은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고 갈파했다. 바라보지만 않고, 먼저 다가서서 몸을 섞음으로써 ‘이웃들의 삶의 진실’을 배우려는 연대의 태도가 청년 황석영에게는 있었다. 1960년대의 청년 황석영은 소설화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황석영이 되돌아 보아야할 ‘부끄러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과거는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주체를 구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문득, 황석영의 젊음이 애절하게 그립다. &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gt;&amp;nbsp;&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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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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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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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6 Nov 2008 14:27: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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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힘을 모으는 방법: 거국내각과 촛불(이영제)</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7</link>
			<description>&lt;DIV&gt;&lt;FONT size=2&gt;* 편집자주: 진보개혁정치세력의 위기의 요인은 국민들의 신뢰상실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따라서 진보개혁정치세력이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되찾는 것은 당연히 국민신뢰의 회복에서 우선 찾아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039;촛불 이후&#039; 진보개혁정치세력들은 또다시 신뢰회복보다는 정권에 대한 반대에서 길을 찾고 있는 듯 보입니다. 설사 그것이 신뢰회복을 위한 또 한번의 민주화 투쟁에의 역사적 헌신이라는&amp;nbsp; 이름을 달고 있다 해도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입니다. 국민들이 진보개혁정치세력에게 무엇가를 원하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지만, 혹시 원하는 것이 있다해도 그것은 정권반대운동이 아니라, 서민경제회복을 위한 구체적 대안의 제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의 실현은 결코 정권과의 싸움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정권이 더욱 잘할 수 있도록 거국적 협력의 &#039;불가피성&#039;을 수용케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amp;nbsp;이번 이영제 연구위원의 정치사회비평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토론을 기대합니다. &lt;/DIV&gt;
&lt;DIV align=left&gt;-----------------------------------------------------------------------------------------------&lt;br /&gt;&lt;/DIV&gt;
&lt;DIV align=center&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STRONG&gt;힘을 모으는 방법: 거국내각과 촛불&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이영제&lt;/DIV&gt;
&lt;DIV align=center&gt;(대안지식연구회)&lt;/DIV&gt;
&lt;DIV&gt;&lt;br /&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어디로 힘을 모을 것인가?&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가중을 더해가는 경제위기에 비례하여 개각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촛불 정신 계승을 표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은 “경제와 민생,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 유린당하는 총체적 위기, 국가적 비상시국”을 맞아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의 연대와 국민의 결집”을 호소하고 “거국민생내각 구성”을 요구하였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amp;nbsp;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구정권 인사라도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해야 한다”는 발언에 이어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정부여당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여당을 믿고 힘을 보태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부를 중심으로 “정쟁을 중단하고 함께 손을 잡고 위기의 파고를 넘어서자”고 주장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amp;nbsp;양자는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방향과 이명박 정부에 협조하는 방향이라는 상반된 방향으로 국민의 힘을 모으자는 데에서 양 극단에 서 있다. 그러나 공히 국가 위기상황임을 공유하고 그 해결책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양자의 공통점은 여기에서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가는데, 비록 그 범위와 대상이 상이할지라도 특정 정치세력이 독식하고 있는 현행 내각을 ‘거국내각’ 형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STRONG&gt;국가위험과 책임의 분담&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국민들의 인내와 협조로 시작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그 초점이 제도 정치권에 맞추어져 있다. ‘문맥상’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주장보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주장이 훨씬 덜 불편하다. 그 이유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예를 든 구 정권인사들의 코드와 현 정권의 코드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주장과 대안이 구체적일뿐만 아니라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amp;nbsp;홍준표 원내대표의 구정권 인사 등용 또는 ‘여야정 정책협의회’ 방식의 ‘거국내각’은 국민들의 개각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인사난을 해소하고 초정파적 정치라는 명분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한편 효율적인 국민 동원을 도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정권 또는 모든 정치세력들과의 책임의 분담 내지는 공동책임을 통해 실패에 따른 위험의 분산과 성공에 따른 보수의 증대를 예상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주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꿈꾸던 대연정의 연장선에 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039;거국민생내각’의 어색함&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반면 민생민주국민회의는 ‘거국민생내각’보다는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의 연대와 국민의 결집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고 그나마 현 내각의 즉각적인 총사퇴와 ‘거국민생내각’ 구성이 가장 구체적인 주장이라는 사실은 출범선언문을 읽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우선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무엇인지부터가 모호한데 그것이 촛불인지 아니면 ‘거국민생내각’에 참여할 대안조직인지, 촛불이 대안인지, 아니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대안인지, 대안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등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다음으로 출범 선언문에서 유일한 요구인 ‘거국민생내각’을 어떻게 구성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물론 내각은 총리의 제청 하에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그 책임은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아니라 집권세력에게 있다. 그렇지만 유일한 대안이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것’이라는 것은 무언가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STRONG&gt;돌맹이 던질 사람보다 박수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거국내각 참여 제안을 받는다면 흔쾌히 참여할 수 있는 진보인사는 과연 있는가? 거국민생내각에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참여할 것인가?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거국민생내각은 홍준표 원내대표가 이야기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정치세력이 싸우지 말고 민생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것은 정쟁의 중단과 타협을 의미하기도 한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시급한 것은 이명박 정권에게 돌맹이를 던질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더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박수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그런 대안 내지는 대안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박수 받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명박 정권의 반대편에 위치한 정치세력들 역시도 박수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일단 촛불을 계승한 ‘민생민주국민회의’로 결집하라는 모호하고 무책임한 주장에서 벗어나 자신을 주장과 대안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lt;/DIV&gt;&lt;/FONT&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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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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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0 Oct 2008 15:05: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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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오늘의 상황과 지(知)의 변혁 문제(이명원)</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6</link>
			<description>&lt;br /&gt;
&lt;DIV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3&gt;오늘의 상황과 지(知)의 변혁 문제&lt;/FONT&gt;&lt;/STRONG&gt;&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br /&gt;&lt;br /&gt;&lt;/FONT&gt;&amp;nbsp;&lt;/DIV&gt;&lt;FONT size=2&gt;
&lt;DIV align=center&gt;이명원&lt;/DIV&gt;
&lt;DIV align=center&gt;(대안지식연구회)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을 일시적인 사태로 볼지, 아니면 자본주의의 체제 차원에서의 구조변동으로 볼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 중요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사유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동시에 요동치는 한국의 정치경제학적 위기상황에 대한 사유 역시, 앞에서 제기한 문제를 토대로 진지하게 사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칭 ‘리만 브라더스(이명박․강만수의 희비극적 통치를 일컫는 조어)’의 무능 때문에, 작금의 한국사회의 위기가 증폭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 판단에 이들이 한국사의 전개에서 맡고 있는 배역은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극장의 전체 구조를 고려하면, ‘소도구’에 비견할 만한 상징적 중요성조차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별다른 오디션을 거치지 않았거나, 이미 한 번의 오디션에서 실패한 배우를 무대에 등용시킨 ‘보이지 않는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역시 통탄할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어렵게하는 것들&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오늘의 금융위기 상황은 사실 ‘구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일찍이 산업자본주의를 검토하면서 예견한 ‘주기적인 공황’과 닮아 있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적어도 마르크스가 목격했던 초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값싼 ‘원료’와 ‘노동력’을 충당할 ‘외부’란 것이 있었다. 대체로 농업 국가였던 아시아․아프리카가 대거 식민지로 편입됨으로써, 이 ‘외부’는 세계자본주의의 성장의 토대로써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연히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이들에 의해 작동했던 자본주의 체제는 당연히 안정성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러나 착취경제에 의존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는 위기로 빠져들고, 그것이 히스테릭한 형태로 분출된 것이 대공황이며, 공황의 탈출구로 선택된 것이 제국주의 국가 상호 간의 전쟁인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전쟁이 끝난 후 식민지였던 아시아․아프리카들은 독립하게 되지만, 이들의 정치적인 독립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단계에서 성립된 자본주의 체제의 ‘비대칭적인’ 메커니즘은 종주국과 구식민지 사이에서 변함없이 관철된다. 물론 1945년에서 1989년에 이르는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권의 출현은 표면적으로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혀 이질적인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이 역시 국가가 시장의 역할을 대리한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는 변함없이 추구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원료와 노동력, 국경과 화폐의 ‘낙차’를 통한 이윤의 확보가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역에 필요한 ‘공간의 낙차’가 필수적인데, 1989년 이후 글로벌화한 자본주의는 그것을 가능케 할 ‘공간적 외부’를 상실함으로써(WTO나 FTA 등을 통한 관세장벽의 철폐), 극단적으로 ‘시간의 낙차’에 의존하는 세계화된 금융시장을 통해, 이윤을 확대하고자 하는 체제 유지전략이 고안되었던 것이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국가 간 ‘공간의 낙차’에 의존한 경제는 실물경제이며, ‘시간의 낙차’에 의존한 그것은 금융경제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가 완숙기에 이른 오늘의 현실에서 실물과 금융 모두 체제 유지의 확실성을 찾아볼 길은 어디에도 없다. 실물경제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값싼 ‘노동력’을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세계시장이라는 장 안에서만 가동될 수 있는데, 세계시장이 갈수록 ‘균질화’함에 따라 노동에 따르는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지금도 저임의 노동력의 기반이 되고 있는 중국 노동시장의 변화다. 개혁개방 이후 전지구적으로 진행된 기업의 대중국 투자란 결국 신규시장의 확보와 저임 노동력 확보에 대한 기업의 기대감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산업화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자, 필연적으로 ‘노동정의’에 대한 관념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임금상승 압력이 당연히 높아진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다음으로 언급되어야 할 것은 과거에는 ‘비용’으로 고려되지 않았던 요소에 대한 가격반영의 압력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예가 ‘이산화탄소 배출규제’를 둘러싼 이른바 ‘탄소경제’와 같은 개념의 부상이다. 산업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서는 모든 ‘환경비용’ 등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이 ‘비용의 외부화’라고 하는 경제학의 개념이다. 그러나 오늘의 글로벌화된 생태 위기상황은 국가와 기업으로 하여금 ‘비용의 내부화’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같은 일부 국가가 ‘교토의정서’에 동의하지 않는 등 저항은 거세지만, 그러한 고집의 결과란 결국 자본주의 체제는 물론이고 지구적 생존 자체를 파괴적으로 침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무모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동시에 각각의 개별국가들은 자국 내에서의 민주주의의 진전과 국민들의 기대수준의 상승 때문에, 교육과 의료, 복지와 같은 부문에 대한 조세의 ‘재분배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부문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경제노선을 이끌고 가고 있지만, 이러한 ‘국가의 부도덕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존재근거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회의를 낳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에 대한 부정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가는 설사 그것이 자신의 동맹적 파트너인 시장 부문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타협적 복지정책 및 조세의 ‘재분배’를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작금의 실물경제 부문에서의 내수부진의 구조화는 인간노동을 천연덕스럽게 비용으로만 사유하는 기업의 싸늘한 계산과 재분배 기능을 삭제시키는 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불가피한 저항이기도 하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화석연료의 급진적인 고갈현상은 오늘의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기요인의 상수다. 지금이야 세계경제 위기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 때문에 석유를 포함한 화석연료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나, 적어도 한 세기 이내에 그것이 일정하게 피크에 도달한 후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 결과는 당연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동반몰락 또는 아노미를 초래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요 경제체제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기도 하지만, 곡물가 파동에서 확인했듯 산업구조 재편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해 보면, 미래의 불확실성은 해소될 가능성이 희박하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이러한 사실과 함께, 실물경제 또는 물질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가능케 했던 지구인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 요소다. 오늘의 노동자들은 초기 산업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했던 ‘금욕적 노동윤리’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다. 실물경제 부문에서의 노동보다는 ‘증권’과 ‘부동산’을 포함한 카지노에 유사한 ‘우연성(운명)의 투기’에 이들이 더욱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실물경제 안에서의 노동의 결과가 그의 미래전망을 낙관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기적이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노동윤리의 변화다. 그런데 이 ‘우연성의 투기’란 비물질 경제 영역의 근본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초기산업자본주의는 ‘공간의 낙차’ 아래서 상품 교환을 ‘관세’의 형태로 방어할 수 있었지만, 오늘의 정보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시간’을 장악해야 하는데, 이것을 지구화된 수준에서 컨트롤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의 악무한적인 실시간대의 글로벌한 교환을 통해서 지탱되던 금융자본주의는 한번 붕괴하면, 연쇄적으로 그 뿌리까지 붕괴시킨 후에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자본주의 체제의 &#039;밖&#039;에 대해 상상하는 지식의 변혁 필요&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이러한 장기국면에서의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는 일찍이 월러스틴이 &#039;세계체제론&#039;등을 통해 제기한 바 있으며, 한국에서는 문학비평가 김종철이 [녹색평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해 온 바 있다. 그러나 해법의 차원에서 두 사람의 태도는 상이하다. 월러스틴은 향후 진행될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상황은 짧게는 50년에서 길게는 100년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는데, 이 시기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고통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매우 험난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묵시록적 주장을 펼치는 데 멈춰 있다. 이에 반해, 김종철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화폐경제’의 폐해로부터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벗어나 ‘농적 순환사회’를 모토로 한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풀뿌리민중들이 주체적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이런 진단이 묵시록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묵시록적 위기에 처한 것은 현단계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고, 이 체제가 초래할 고통의 대부분은 체제의 꼭지점에 있는 지배계층들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들’이 짊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사정이라면 역시 중요한 것은 파상적인 고통에 직면할 가능성이 분명한 민중들 그 자신이, 체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달콤한 약속들에 대한 거부를 인식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분명히 하는 데에 있다. 가령 경제발전만이 살 길인데, 이를 위해서는 알 수 없는 무한 경쟁체제와 승자독식구조에 순응해야 하며, 특히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발적인 ‘고통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더 이상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위기에 빠진 것은 민중들 그 자신일 터인데, 과거에도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세계의 국가들은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말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국가의 위기관리 체제를 보면, 국가는 시장과의 동맹적 파트너이지 풀뿌리 민중들의 보호자가 아닌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이런 구조적 체제 변화기에는 ‘지(知)의 변혁’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세계사적 변화는 언제나 지(知)의 변혁을 초래해왔다. 오늘의 세계사적 지식생산 양식의 근거는 근대 자본제 질서에 부응하여 성립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체계화된 철학에서의 진, 선, 미 영역의 완전한 분화는 통치방식에 있어서의 관료제의 전문화와 인문적 지식인의 추방, 테크노크라트의 부상이라는 지식과 지식인의 분화형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동시에 대학을 포함한 학문영역에서 성립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분기와 같은 분과학문 체제의 구조화는, 학문 자체의 내재적 탐구욕보다는 체제유지와 관련된 실용학문, 더 정확하게는 체제유지학문으로서의 성격이 확고하게 강화되었음도 부정하기 힘들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냉전기를 거치면서 대학에서의 지식생산은 국가의 압력에 빈번하게 노출되었지만, 냉전 이후 절대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고조되면서 그것은 다시 시장 부문의 노예적 상태로 빠른 속도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한국대학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대학의 학부교육은 좋게 말하면 ‘국민교육’, 냉정하게 말하면 ‘직업훈련교육’으로 격하되었으며, 대학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교원 축에도 끼지 못하는 박사급 시간강사들은 그 지위와 현재적 상황은 다르지만, 지식생산에 따르는 학문의 내적 희열과는 무관한 ‘기능적 지식’의 생산압력에 가감 없이 노출되고 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그 위기가 가령 1997년의 IMF 사태와 같은 경제적인 수준에서 날카롭게 노출될 때마다, 혹은 이른바 ‘87년 체제론’과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가감 없이 노출돌 때마다, 한국의 지식사회에 던져지는 사회적 비판은 이런 것이다. 왜 지식인들은 임박한 경제위기를 경고하지 못했나. 왜 지식인들은 도래할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지 않았나 하는 저널리즘적 힐난이 그것이다.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들리겠지만, 이 힐난을 가볍게 무시할 권리가 지식인에겐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동시에 이러한 힐난이 단순히 지식인에 대한 폄훼라기보다는 도발적인 형태로 제기되기는 했지만, 진실의 유력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점에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식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지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체제적 지식인’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강화했고, 이 때문에 체제 내화된 지식생산의 카테고리 안에서 기능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요컨대 규범적인 성격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이룬 근대적 지식생산의 ‘외부’가 소실됨으로써, 지식생산이 프로젝트로 불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가 구조화됨으로써, 지(知)의 해방적 또는 예언자적 기능이 대부분 거세되었다고 생각한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국가나 시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知)의 생산방식은 결국 ‘고용된 지식’에 불과할 뿐, 지(知)의 변혁적 기초가 되어야 할 ‘비체제적 상상력’에 입각한 근본적 사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동시에 기능적․실용적 지식의 전사회적 환대는 근대적 지(知)의 출발점에서, 바람직하게 제기된 체제를 상대화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유혹이기도 했다. 근대이행기에 데카르트가 ‘이성’에 의해 ‘신’을 상대화했듯이, 조선후기의 실학자 박제가가 ‘한국어’를 통해 ‘중화주의’를 상대화했듯이, 방법적으로든 아니면 실천적으로든 스스로를 시스템의 ‘외부’에 위치시키는 일이 지(知)의 변혁적 기초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 지(知)의 변혁적 시선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적 위기를 통해서만 존속할 수밖에 없는 자본제 경제체제의 ‘외부’를 상상하는 일이며, 그것이 공산주의건 사회주의건 간에 어쨌든 ‘국가’라고 하는 터미널을 통해서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발전론적 세계관’의 강력한 자장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는 일에 있지 않을까. 오히려 작금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국가나 시장, 세계체제의 구조적 압력에 대항하여 풀뿌리 민중들의 자율적 결사와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그리고 사람과 자연 모두가 조화적 공생을 이룰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아닐까.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동시에 우리는 인문정신을 포함하여 지(知)의 변혁에 있어 기초가 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합적 비전과 영감을 촉진하는 지적 태도를 확대하고, 지(知)의 변혁과정에서 체제와 결별함에 따라 파생될 경제적 안정성의 붕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풍요가 결코 보상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의 비가시적인 가치를 재확인하는 작업에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화폐체제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물신’의 무대에서 퇴장하여, 막 태어난 아이가 경이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듯이, 분노도 두려움도 없는 울음으로 세계를 껴안고 있듯이, 그렇게 말이다. &amp;nbsp; &amp;nbsp;&amp;nbsp; &lt;br /&gt;&amp;nbsp; &amp;nbsp; &lt;br /&gt;&lt;/DIV&gt;&lt;/FONT&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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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category>비체제 지식인</category>
			<category>이명원</category>
			<category>자본주의의 존속</category>
			<category>지의 변혁</category>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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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Oct 2008 17:00: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금융위기와 지식인-1997년 경제위기를 다시 반추하며(김원)</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5</link>
			<description>&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lt;STRONG&gt;금융위기와 지식인 - 1997년 경제위기를 다시 반추하며&lt;/STRONG&gt;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김 원&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대안지식연구회)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1997년 겨울, 나 &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1997년은 한국사회의 현재를 만든 ‘전환점’이었다. 30년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오던 발전주의 경제성장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평생직장 소멸, 고용불안, 청년실업, 주식 투자 등의 말이 사회화되기 시작한 시점이 그 때였다. 그러나 역설적인 점은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정치-사회세력이 집권을 하고 있고, 이 패러다임이 대중들의 의식을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화-경제성장이라는 괴물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는 셈이다.&amp;nbsp; &lt;/FONT&gt;&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10년 전 나를 되돌아보면, 미쳐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환을 피부와 몸으로 느끼지 못했던 ‘골방안의 예비연구자’였다. 연일 방송되는 경제위기, 국가부도 사태, 고용불안 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강 건너 불구경’했다고 이야기한다면 솔직할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나는 1997년 외환위기가 나의 삶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지진아도 보통 지진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lt;/DIV&gt;
&lt;DIV&gt;&lt;br /&gt;하지만 ‘과연 이것이 나만의 문제였을까’라고 자문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당시 사회과학자들 사이에는 유독 ‘신앙고백’이 많았다. ‘왜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나’라든지 ‘한국 사회과학의 예측 능력의 결핍’ 등에 관한 내용이 유독 눈에 띄었다. 더불어 도대체 왜 경제위기가 도래했는지에 관한 수다한 원인 분석이 국내외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인지 이제 97년은 부정할 수 없는 ‘경제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lt;/DIV&gt;
&lt;DIV&gt;&lt;br /&gt;하지만 나는 문제가 예측능력과 이를 위한 개념적 도구의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97년 이후 거리와 지하철 등 도시 곳곳에 수많은 노숙자와 실업자들이 넘쳤다. 한때 지하철에 “IMF 한파로 ...”로 말을 시작해서 생계를 이어가려는 걸인이나 도산한 회사의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팔려고 얘를 쓰는 사람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식인들은 예측과 원인 분석에 앞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성장주의-발전주의 패러다임의 종언 속에서 어떤 삶의 가치와 기준을 새로이 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 닥쳐온 시장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 논리를 인정한 상태 속에서 ‘반대’ 만이 외쳐졌다.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성장주의라는 난파선에서 뛰어내리기&lt;/STRONG&gt;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미 한국에 상륙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039;외환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039;고 이야기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며칠 동안 몇 백원 상승하는 상황은 흡사 11년 전 가을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단지 현 정권의 정책적 오류나 장관 교체 등의 차원은 아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자,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금융위기는 경제적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윤리적·정치철학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이제 신자유주의 하에서 다른 삶과 사유 방식을 토론하고 제시할 수 있는 장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97년과 같이 전문가임을 앞세워서 위기의 원인, 진단 그리고 해법을 고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금융위기와 성장주의 발전 정략에 대한 제대로 대응이 결코 아니다.&lt;/FONT&gt;&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br /&gt;6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는 근대화, 경제성장주의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세력이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생산력과 성장이 진보이자 변혁의 잠재적 가능성으로 여겨졌으며, 그런 인식 틀에서 벗어난 발언은 퇴영적 혹은 공상적이란 딱지를 붙였다. 그 사이에 대중들은 경제위기 10년을 경제성장의 실패라고 주장하는 시장주의 정치세력에게 ‘미덥지 않은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제 나를 포함한 지식인들은 과거 스스로를 규정했던 단선적인 사회진보의 논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lt;/FONT&gt;&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벌써 금융위기는 현물경제에까지 파급을 미치고 있다. 현재 가계부채는 97년 수준보다 3배 이상 많으며, 향후 금리 상승, 시장에서 자금 부족, 중소기업의 도산, 고용불안, 급속한 가계부채 심화와 고금리 신용대출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이 예측된다. 이것은 97년 이후 이야기되던 ‘양극화’ 차원이 아니라, 삶과 미래에 대한 ‘총체적 불안 심리’로 가속화되고 있다. 잇달은 자살, 불안정노동자의 확대, 교육전쟁이라 불리는 악무한의 시스템, 심리적 불안감을 타인에 대한 가해로 일시적으로 해결하려는 흐름들, 이처럼 벼랑 끝으로 몰린 공황기의 대중들은 다시 ‘잠재적 안정’이란 품에 안기기 위해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통합’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줄 수도 있다. &lt;/DIV&gt;
&lt;DIV&gt;&lt;br /&gt;하지만 또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촛불시위와 각종 저항에서 보여준 대중들과 불안정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가 역동성이 존재하는 ‘강점’이 있는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어 준다. 나는 올해 어느 자리에서 ‘5년간 촛불이 밝혀질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특히 앞으로 그 계기는 촛불과 같이 우발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폭발인 동시에, 기존 운동 조직이 아닌, 새로운 집단에 의해 폭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몰아닥칠 금융위기와 그 파급은 대중들에게 97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장과 경쟁, 성장논리에 맞서, 시장과 경쟁의 시녀가 되라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 형태의 분출과 현재 성장주의 시스템이란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흐름이 과거보다 급속히 확장될 것이다. &amp;nbsp; &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뒷북을 칠 것이 아니라 당장 준비하자 &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그렇다면 우리는 난파선이 가라앉을 때까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면 되는가?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에 근거한 대기주의란 세기 초 망령을 반복하자는 말은 아니다. 나는 이후 급속히 확산될 불안과 균절 속에서 현재 시스템 하에서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운 새로운 주체들 - 예를 들어 불안정노동자, 실업자, 청년, 여성 등 - 이 자신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이 당장 노조 조합원이나 사회운동의 회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의미 있는 조직 률 수치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불안이 불만과 저항으로 솟구칠 때, 우리는 다시 촛불 뒤만 쫓으며 헤메서는 안 되지 않을까? &lt;/FONT&gt;&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나는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들이 대중운동과 그들 속에서 미래를 만들어낼 준비를 자신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같이 토론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찾아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비록 문법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국지적이고 지역적 행동’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한꺼번에 비틀린 사회 전체를 뒤엎을 수 있다고 사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으며, 교만함의 소산일 것이다. &lt;br /&gt;이반 일리치는 오늘날 민중이 평화를 되찾으려면 무엇보다도 자립적이며 자치적 삶의 기반을 뿌리로부터 파괴하는 경제발전의 논리를 배격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금융위기를 이미 겪고 있는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제 지식인의 현장으로 가서 준비하는 일이 남았다. &lt;/FONT&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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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category>대항과 불복종&#039;</category>
			<category>성장주의</category>
			<category>외환위기</category>
			<category>자치</category>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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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9 Oct 2008 17:32: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국방부의 과잉충성과 통치전략 누출(이승원)</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4</link>
			<description>&lt;DIV align=center&gt;&lt;STRONG&gt;국방부의 과잉충성과 통치전략 누출&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lt;FONT size=2&gt;
&lt;DIV align=center&gt;&lt;br /&gt;&lt;br /&gt;이 승 원 &lt;/DIV&gt;
&lt;DIV align=center&gt;(대안지식연구회 연구원)&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039;반공국가&#039; 재건을 꿈꾸며&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얼마 전 국방부의 과잉충성이 이명박 정부의 통치전략을 드러내고 말았다. 충성으로 치자면 야 포상감이지만, 전략누출이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웃지 못 할 일이다. 통치전략이 새로울 건 없었다. &#039;민주주의&#039;라는 불편한 가치를 뒤로한 채 &#039;좌우&#039;대립이라는 깔끔한 구도 속에서 강력한 &#039;반공주의 국가&#039;를 재건하는 것이다. 국방부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요구안은 여기저기서 &#039;독재로의 회귀&#039; 혹은 &#039;새로운 파시즘&#039;이라는 비판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조심스레 진행하는 &#039;반공국가 재건&#039;이라는 본색을 너무 빨리 드러내 버린 과잉충성의 결과였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이명박 정권이 경외하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039;반공주의&#039;는 &#039;빨갱이&#039;의 적화야욕에 맞서는 강력한 &#039;안보논리&#039;였으며, &#039;경제자립&#039;을 위한 국민동원의 이유였다. &#039;안보&#039;와 &#039;경제자립&#039;은 미완의 4월 혁명이 꿈꾸던 &#039;민주주의&#039;의 실현을 위한 토대로 설파되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039;반공주의&#039;는 &#039;민주질서확립&#039;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되었으며, 쓸데없이 &#039;평화통일&#039;이나 &#039;근로기준법 준수&#039;를 외치는 자들은 부지기수 민주질서 전복기도의 &#039;빨갱이&#039;가 되어 감옥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만큼 박정희에게 통치는 간편했고, 이역만리 또 다른 독재자들은 박정희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강력한 반공주의적 통치가 어디 한 방울의 피땀도 없이 만들어졌으랴.&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STRONG&gt;&#039;영어몰입교육&#039;의 기원과 &#039;반공주의&#039; &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1945년 해방 직후 소위 &#039;우익&#039;의 모습은 초라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도 &#039;I can speak English&#039;였다. 일제 강점기 있는 집 자제로서 &#039;영어&#039;정도는 기본이었던 일부 우익들은 해방 되던 해 9월 초 서울을 점령한 미군정의 통역역할을 자임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영어몰입교육의 필요성은 아마도 선친들의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039;건국준비위원회&#039;, &#039;조선인민공화국&#039;, &#039;인민위원회&#039; 등의 조직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었던 좌익에 맞서 우익들은 &#039;English&#039;를 무기로 미군정 하에서 일제 강점기 경찰조직을 부활시켰고, 여러 &#039;청년단&#039;들을 조직하면서 역전의 시기를 넘보고 있었다. 미군정의 한반도 점령 제1목적은 극동지역으로 팽창하는 소련의 제지였고, &#039;반공주의&#039;는 그 핵심 노선이었다. 1945년 겨울 반탁운동을 틈타 이승만은 적극적으로 반공주의를 남한에 설파하기 시작했고, 좌익에 기죽어있던 우익들은 &#039;반공주의&#039;로 미군정과 하나가 되면서 그들의 날을 꿈꾸고 있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을 거치면서 좌우익의 힘은 역전되었다. 좌익의 나이브함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자. 그 해 가을의 패배는 좌익을 &#039;지하&#039;로 들여보냈고, 행복했던 인민위원회들은 강제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 뿐이랴, 한국전쟁이 대한민국 국군을 최대의 국가조직으로 키운 것처럼, 9월의 봉기는 역설적으로 악랄했던 일제 하 경찰조직을 성공적으로 재기시켰다. &lt;br /&gt;&amp;nbsp; &amp;nbsp; &lt;br /&gt;1946년의 가을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미군정은 경찰을 앞세워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체포에 들어갔다. 소위 &#039;좌익숙청(Red Purge)&#039;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군정은 방송국, 통신부, 교통부, 교도소, 소방서 등 공공기관에서 1947년 여름부터 약 10개월 동안 1300여명을 좌익 활동이라는 죄명으로 체포하였고 2년 만에 남한을 강력한 반공주의적 질서로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제주에서는 국군과 청년단의 좌익 토벌작전에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시작되었고, 8월에는 반공주의를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12월에는 &#039;국가보안법&#039;이 제정되었다. &amp;nbsp;&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STRONG&gt;세련된 반공주의로의 회귀&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60년이 흘러 이명박 정권은 우익이 초라했던 1945년의 해방의 기억을 지우고, 우익이 승리의 깃발을 올린 1948년을 기념하는 &#039;건국 60주년&#039;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가을항쟁 이후의 좌파숙청처럼, 촛불집회 진압에 성공한 이명박 정권은 KBS, YTN 등 언론사 통제는 물론 &#039;학술진흥재단&#039;과 &#039;과학재단&#039;을 통합하면서 지식인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촛불집회로 정권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경찰은 현재 &#039;신종 도박&#039;과 &#039;성매매&#039; 단속으로 몸을 풀면서 시민들 위에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039;노래방 도우미 간첩사건&#039;, &#039;오세철 교수 이적단체 사건&#039; 등은 &#039;똘이장군&#039;식의 &#039;반공주의 통치&#039;가 21세기에도 통하는지를 점검하는 소박한 실험에 불과했다. 10년 이상의 장기집권을 위한 교두보인 4년 후의 대선과 총선에서의 제2의 승리를 위해 이명박 정권은 &#039;과거로의 세련된 회귀&#039;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4년 후의 새로운 유권자들을 &#039;친이명박 세력&#039;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바로 &#039;교과서 위주&#039;의 학습이다. &#039;영어몰입교육&#039;은 과거 우익과 미군정이 그러했듯이 미래 &#039;한미동맹&#039;의 초석이 될 것이고, 소위 &#039;좌편향 역사교과서&#039; 개정은 전쟁경험이 없는 미래의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게 &#039;민주주의&#039;라는 가치는 여전히 불편한 입안의 가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의 과잉 충성은 이명박 정권의 &#039;과거로의 세련된 회귀&#039;를 &#039;촌스럽게&#039; 만들어버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알아서 전교조를 뭉개버리고, 우익 시민세력들이 알아서 역사교과서를 개정하고, 상류층 유권자들이 알아서 영어몰입교육 바람을 일으키면 4년 후 재집권은 손안대고 코풀 수 있는 것인데, 국방부의 이명박 정권 통치전략 누출사건은 결국 이명박과 우익세력들이 꿈꾸는 이상형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독재자들이었다는 것을 고백해버린 것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知彼知己百戰不殆와 &#039;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039; 찾기&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역사는 되풀이 된다지만, 이 경우 역사는 반만 되풀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039;세련된 반공주의&#039;로 흩어진 우익들을 총결집시키고 있는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으로 들어가 버렸고, 민주당은 &#039;민주주의와 개혁&#039;보다는 &#039;나이와 연륜&#039;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자신들의 &#039;신비한&#039; 세계에 갇혀있고, &#039;진보신당&#039;은 계급의식 없는 계급에 둘러싸여있다. 대학교수들은 대기업 노조만도 못한 채 복지부동하고 있고, 알만한 지식인들은 밑천이 떨어져 걸식에 바쁘다. 패배자들은 어쩌면 작금의 미국 발 금융위기를 바라보면서 진화론적 종말론에 신비주의자들처럼 메시아적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경제위기는 임계점에 달했고, 서민들은 빚으로 혈세를 내야하고, 비정규직은 카스트제도처럼 굳어져가고 있다. &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039;지피지기&#039;면 &#039;백전불태&#039;라는 옛 경구가 그립다. 이명박 정권은 대단히 훌륭하게 자신의 통치전략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039;우리들&#039;은 지금 &#039;저들&#039;은 물론, &#039;자신&#039;조차 모르고 있다. &#039;반공주의&#039;에 맞서 싸워온 &#039;민주주의&#039;라는 또 다른 전가의 보도는 &#039;선거&#039;와 &#039;투표&#039;라는 길들여진 게임의 규칙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039;선택&#039;과 &#039;연대&#039;를 통해 삶의 열정을 폭발시키는 새로운 거대담론으로 마름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039;선택&#039;과 &#039;연대&#039;는 이 땅의 우익들만의 작업이 되면서 역사는 그저 반만 되풀이 되고 있다. 그나마 &#039;저들&#039;의 속내를 알려준 &#039;국방부&#039;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 지난 글들은 지행네트(&lt;A href=&quot;http://jihaeng.net/&quot;&gt;http://jihaeng.net&lt;/A&gt;) 정치사회비평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 독자분들이 비평글을 비롯한 대안지식연구회의 활동에 이런 저런 조언을 주시고 계십니다. 보다 많은 이들과의 공유를 위해 에디터(김윤철 &lt;A href=&quot;http://mail5.daum.net/hanmail/mail/MailComposeFrame.daum?TO=o:disorder@naver.com&quot; target=right&gt;disorder@naver.com&lt;/A&gt;)에게 메일을 보내시거나 게시판 댓글란에 감상평을 적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향후 대안지식연구회의 활동과 비평 글쓰기에 참조토록 하겠습니다.&lt;/DIV&gt;&lt;/FONT&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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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category>국방부</category>
			<category>대안지식연구회</category>
			<category>이승원</category>
			<category>통치전략</category>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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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jihaeng.net/blog/124#entry124comment</comments>
			<pubDate>Mon, 22 Sep 2008 14:06:3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지식인의 현장- 세미나를 찬양함(김정한)</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3</link>
			<description>&lt;DIV align=center&gt;&lt;STRONG&gt;지식인의 현장 - 세미나를 찬양함&lt;/STRONG&gt;&lt;/DIV&gt;
&lt;DIV&gt;&lt;br /&gt;&lt;br /&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김정한 &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lt;br /&gt;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준엄하다. 여기에는 현실과 멀어진 고색창연한 사회운동에 대한 비판이 함축되어 있고, 그보다 더 많게는 이론 일반, 특히 급진 이론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론, 구체적인 삶과 부대끼지 않는 공허한 이론, 지식인들의 언어유희로 전락한 이론 등에 대한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정당한 비판은, 때로는 이론과 지식인의 존재 자체를 무용하거나 해악만 끼친다고 거부하는 반지성주의와 결합해, 비판 자체에 물릴 정도로 되풀이 넘쳐난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러나 지식인에게 현장은 어디일까? 지식인에게도 현장은 노동과 빈곤이 있는 공장과 농촌, 다양한 사회 소수자들이 투쟁하는 집회와 농성장일까? 하지만 지식인이 지식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존재라면, 지식인이 자신의 존재 이유(reason d&#039;etre)를 유지하면서 현장으로 가는 것만큼 난망한 일도 없다. 지식인이 대중들과 호흡하며 ‘교육자 자신이 교육되어야 한다’라는 맑스의 선언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공장과 거리에서 지식을 생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을 읽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지식인은 공부를 해야 한다. 물론 공부를 책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공부를 하려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돌아보면 내 공부다운 공부는 대학에 입학한 후 선배들이 준비한 ‘교양강좌’에서 시작되었고, 그후 줄곧 이런저런 소모임과 학회에서 선배나 친구들과 함께한 세미나에서 여러 고민을 다듬어갈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도 교육을 통해 많은 학문적 훈련을 쌓기도 했지만, 내 고유한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역시 동학들과 진행한 학회의 수많은 세미나와 뒤풀이의 힘이 컸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여기서 말하는 세미나는 유명 인사들이 고매하게 교류하며 인맥을 쌓는 그런 허례허식의 세미나가 아니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정기적으로 모여 해당 텍스트를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쟁점을 잡아내고, 비판의 논리를 벼리는 장으로서의 세미나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세미나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일은 매우 고되고 힘든 일이다. 가시적인 성과는 거의 없으며, 때때로 지루함과 무료함이 찾아오고,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교육을 때로는 보완하고 때로는 뛰어넘으며, 새로운 이론과 급진적/근본적(radical) 문제의식을 집단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장으로서 세미나는 공부의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학생운동의 위기 이후 해체된 것이 바로 이런 세미나 체계였고,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된 대학(원) 사회에서 오늘날에는 거의 소멸 직전에 이르러 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나는 감히 지식인들이 돌아가야 할 현장은 세미나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인들이 시대적 과제와 정세적 요구들에 실천적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하지만 사실상 지식인이 혁명--혁명이라는 말에 값하는 혁명--을 일으키는 본체(本體)인 적은 없으며, 말과 글이 위력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지식인 자신이 세상을 변혁시킬 힘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 몫은 아마 대중들과 이들이 조직하고 대표하는 사회운동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그 조력자들 가운데 (때로는 중요한) 일부일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이 사회운동의 현장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러나 지식인 고유의 현장은 공장이나 거리가 아니라 세미나이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지식인이 세미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책장을 넘기기겠다는 의미이다. 사회 구조와 그 모순을 이론적으로 인식하고, 비판의 논리를 가다듬고, 새로운 사회의 이론적 대안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글과 삶이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는 작지만 견실한 공동체 공간을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런 곳이 지식인의 현장이 아닐까? 현장으로 가라는 지식인 비판(과 지식인의 자기 비판)에서 잊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세미나가 아닐까? 그러므로, 어느 날에도 나는 세미나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며 ‘아름다운 폐인’이 되어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lt;/DIV&gt;
&lt;DIV&gt;&lt;/FONT&gt;&lt;/DIV&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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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category>세미나</category>
			<category>이론</category>
			<category>존재이유</category>
			<category>지식인</category>
			<category>학생운동의 위기</category>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guid>http://jihaeng.net/blog/12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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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2 Sep 2008 14:56: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난도질 당하는 학문 조직(오창은)</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2</link>
			<description>&lt;DIV align=center&gt;&lt;STRONG&gt;난도질 당하는 학문 조직&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오창은&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lt;FONT size=2&gt;
&lt;DIV&gt;&lt;br /&gt;&lt;STRONG&gt;거대학문권력의 탄생?&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인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의 모임에서 ‘학술진흥재단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소리에 한 문학박사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놀라워했다. 다른 연구자는 그간 학술진흥재단(학진)이 학문세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거론하며, 차라리 잘 되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찌되었든, 그 모임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두번 인문사회과학 기초학문 지원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몇몇은 이번 여름을 인문한국(HK) 연구계획서 작성에 온전히 투자했으며, 한 연구자는 두뇌한국(BK)사업 중간보고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소금에 절인 듯 무거워진 상태였다. 이 모든 사업은 학진에서 주관하고 있다. 학진의 사업일정은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lt;/DIV&gt;
&lt;DIV&gt;&lt;br /&gt;대학의 전임교수 보다는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에게 더 존재감이 높은 학진이 없어진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조직인 학진의 존폐가 무어 그리 대수이랴. 하지만, 그 이면의 맥락은 만만치 않은 함의를 안고 있어 문제적이다. 한국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지형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한국학문은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학진의 존폐가 아닌, 새롭게 탄생한 ‘한국연구재단(가칭)’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공공기관 선진화 방안과 ‘한국연구재단(가칭)’의 탄생&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지난 8월 26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연구개발(R&amp;amp;D) 관련 정부 기관 및 진흥기관을 29개가 13개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개발(R&amp;amp;D) 지원기관 6개가 3개로 통합되고,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 3개를 1개로 통합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산업기술평가원과 산업기술재단, 부품소재산업진흥원, 기술거래소,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에너지기술기획평가원이 없어지고, 새롭게 산업분야와 에너지분야, 산업기술정책 등 3개 기관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lt;/DIV&gt;
&lt;DIV&gt;&lt;br /&gt;문제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의 재편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정책실에 따르면,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가칭)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야말로 매머드급 ‘거대학문권력’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른바 ‘제2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묻혀 그 심각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lt;/DIV&gt;
&lt;DIV&gt;&lt;br /&gt;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을 통합해 출범하게 될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한국학문에 대한 거시적 시각에서 볼 때, 철회되어야 할 정책 추진이다. 더불어 이와 관련한 심각한 논의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학문의 자율성 옹호가 한국사회의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정치적 성과주의에 매료된 통합의 논리&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amp;nbsp;‘(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을 위한 문제의식은 ‘공공기관 선진화와 기구 통폐합을 통한 효율화’, 그리고 ‘신정부 출범 및 교육과기부 발족’에 따른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지원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정치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외쳐대며, ‘과거 흔적 지우기’에 몰두하는 맥락에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매머드급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그것이 비록 기존 연구관리기관의 통합일 지라도 새로운 조직의 탄생이기에 ‘하나의 성과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일종의 성과주의적 차원에서 조직의 통합을 바라봄으로써, 학문사회가 견지해야 할 자율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lt;/DIV&gt;
&lt;DIV&gt;&lt;br /&gt;학문 정책이나 학문 기구의 개편이 오로지 새정부 출범이라는 정치 논리와 효율이라는 경제논리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모습을 볼 때, 학문연구자들은 스스로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학문이 전혀 자율적이지 못하는 상처를 포함하고 있으며, 학문세계가 궁극의 가치를 향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극심한 좌절감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통합안에는 1977년에 설립되어 31여년의 역사성을 가진 ‘한국과학재단’, 1981년에 설립되어 27년간 한국학문 진흥의 논리를 개발해 온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인문정신은 과거와 역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한다. 청산하고 재편하려고 칼부터 들이대는 태도에서 인문학을 포함한 학문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읽어낼 수는 없다. 다분히 청산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적 성과를 위해 기획된 듯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은 그 발상부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lt;/DIV&gt;
&lt;DIV&gt;&lt;br /&gt;게다가 통합의 논리도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의 융합연구가 촉진되고, 기초연구 비중이 높아지며, 연구자의 행정부담이 완화되고, PM의 역할이 강화된다고 한다. 이러한 개선 사항이 왜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lt;/DIV&gt;
&lt;DIV&gt;&lt;br /&gt;통합의 효과로 제시된 사항은 기존 조직 체계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인데, 오직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통합의 논리는 단지 조직의 일원화를 통해 국가 관리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연구 지원을 받는 당사자인 학문연구자들의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의견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하는 현 상황도 문제가 많다. 수요자 중심의 연구관리 제도를 확립하겠다는데,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행정기구의 재편에 따른 파장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연구자들에게 재편 이후의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셈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학문지원정책과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 &lt;/STRONG&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시기의 국가 주도의 학문지원정책은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039;에 입각해 있었다. 대리인 이론은 주당사자(principal)가 대리인(agency)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가시적이기도 하고 비가시적이기도 한 이러한 부가가치는 장기적이면서도 지속적인 투자와 간접화된 개입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학술진흥재단을 포함한 학문지원시스템은 큰 범주에서는 국가(혹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주당사자’가 ‘대리인’으로 학술진흥재단․한국과학재단을 내세워 진행하는 학문지원정책이다. 그래서 학술진흥재단 등은 다시 ‘주당사자’가 돼 ‘각 대학’ 혹은 ‘학문연구자’를 ‘대리인’ 삼아 학문의 성과를 의뢰했다. 서로가 연관돼 있는 이러한 관계는 큰 틀에서 볼 때 학문에 대한 국가의 간접화된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학술진흥재단은 중간자로서 ‘학문연구의 내용에 대한 개입’은 가급적 회피해 왔다. 이러한 합리적 학문개입으로 인해 학문연구자들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시스템에 양가적 감정을 가져왔다. 학문의 상대적 자율성의 보존하려는 태도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지원 제도라는 것 자체가 학문세계에 대한 개입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지녀왔던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연구자들은 근본적으로 국가기구의 학문영역에 대한 개입을 거부했고, 학술진흥재단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학문세계의 자율성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STRONG&gt;국가기구에 의한 학술연구의 종속 가능성&lt;/STRONG&gt;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하지만,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대리인 이론이 갖고 있던 합리성마저 포기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국가가 직접 학문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내비춰진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직접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운영에 개입하여 특정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선정에도 개입하려 한다. 즉, ‘(가칭)한국연구재단’의 국가기구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교과부가 ‘연구과제의 조직화’ ‘연구개발 계획서의 검토 및 조정’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마련한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가 ‘(가칭)한국연구재단’에 함께 존재하게 됨으로써, 이공분야의 논리로 인문사회분야 지원시스템을 만들 경우, 국가가 학술연구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에 대한 인문사회분야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lt;/DIV&gt;
&lt;DIV&gt;&lt;br /&gt;연구주제를 국가기구에서 공모하고, 그 연구팀 선정에 직접 개입하게 될 경우 학문은 도구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학문을 호명할 수는 있다. 이공계 분야에서는 비일비재한 것이 국가기구의 개입에 의한 특정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와 이에 관한 성찰을 통해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향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뤄지는 국가기구의 개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공동체 내의 담론체계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했을 때, 집단적 불행이 따라왔음은 역사적 사실들이 증언한다. 전체주의 사회는 폭력을 통합 억압으로만 유지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을 합리화한 다양한 학문적 지원 속에서 그 기반을 다졌다. 파시즘 체제도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데, 그 동의의 저변에는 동원된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뒷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학문지원 체계를 거대기구로 통합해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amp;nbsp; &lt;/DIV&gt;
&lt;DIV&gt;&lt;br /&gt;‘(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향후 학문연구자들의 학문적 독립성을 훼손할 뿐 만 아니라, 학문에 대한 국가개입이 노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거대학문권력’의 탄생을 예고한다. 국가 기구가 학문을 조정하려는 순간, 그 사회는 정신적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학문의 자유가 박탈당한 사회는 영혼을 강탈당한 육신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는 내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에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 대안지식연구회의 정치사회비평 지난글들은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lt;A href=&quot;http://jihaeng.net/&quot;&gt;http://jihaeng.net&lt;/A&gt;)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lt;br /&gt;&lt;/DIV&gt;&lt;/FONT&gt;&lt;br /&gt;&lt;FONT size=2&gt;※ 편지내용이 잘 안보이시면 &#039;원문보기&#039;를 눌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브라우저에서 해당 언어의 인코딩을 지원해야 합니다.&lt;br /&gt;&lt;br /&gt;&lt;/FONT&gt;&lt;A href=&quot;http://wwl389.hanmail.net/Mail-bin/view_submsg.cgi?TM=Yc9Q727BFSPMAt7dK%2FOffx41tQgA21KCHyRSTzlGhq9FTwi%2FFi4wnbm96yHKHJRFd5p6kmIc1X%2Fqw0ctCL5Xv0ZhGgGIbABVJDE%2FdpN6wqUoLigwG3X6nHbwEARWGR1T1Ql0D1ryX%2F4N4IZjOup7CxS6xm1oFA7Yz4eA91flkIAC4to9DW2W2kU2xpBEHV0cMdsMr7RG9Yf%2BjPbFvWH7XQ%3D%3D&amp;amp;MSGID=z000000000J9j5y&amp;amp;pos=18358&amp;amp;bodylen=18252&amp;amp;type=foreign&quot;&gt;&lt;FONT size=2&gt;원문보기&lt;/FONT&gt;&lt;/A&gt;&lt;br /&gt;&lt;FONT size=2&gt;언어종류: utf-8&lt;br /&gt;Content-Type: text/html &lt;/FONT&gt;&lt;TEXTAREA id=RE_CONTENT style=&quot;DISPLAY: none&quot;&gt;﻿&amp;lt;!DOCTYPE HTML PUBLIC &quot;-//W3C//DTD HTML 4.0 Transitional//EN&quot;&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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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amp;lt;BR&amp;gt;&amp;lt;STRONG&amp;gt;거대학문권력의 탄생?&amp;lt;/STRONG&amp;gt;&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amp;nbsp;&amp;lt;/DIV&amp;gt;
&amp;lt;DIV&amp;gt;인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의 모임에서 ‘학술진흥재단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소리에 한 문학박사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놀라워했다. 다른 연구자는 그간 학술진흥재단(학진)이 학문세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거론하며, 차라리 잘 되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찌되었든, 그 모임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두번 인문사회과학 기초학문 지원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몇몇은 이번 여름을 
인문한국(HK) 연구계획서 작성에 온전히 투자했으며, 한 연구자는 두뇌한국(BK)사업 중간보고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소금에 절인 듯 무거워진 
상태였다. 이 모든 사업은 학진에서 주관하고 있다. 학진의 사업일정은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대학의 전임교수 보다는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에게 더 존재감이 높은 학진이 없어진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조직인 학진의 
존폐가 무어 그리 대수이랴. 하지만, 그 이면의 맥락은 만만치 않은 함의를 안고 있어 문제적이다. 한국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지형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한국학문은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학진의 존폐가 아닌, 
새롭게 탄생한 ‘한국연구재단(가칭)’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amp;nbsp;&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STRONG&amp;gt;공공기관 선진화 방안과 ‘한국연구재단(가칭)’의 탄생&amp;lt;/STRONG&amp;gt;&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amp;nbsp;&amp;lt;/DIV&amp;gt;
&amp;lt;DIV&amp;gt;지난 8월 26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연구개발(R&amp;amp;amp;D) 관련 정부 기관 및 
진흥기관을 29개가 13개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개발(R&amp;amp;amp;D) 지원기관 6개가 3개로 통합되고,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 3개를 1개로 통합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산업기술평가원과 산업기술재단, 부품소재산업진흥원, 기술거래소,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에너지기술기획평가원이 없어지고, 새롭게 산업분야와 에너지분야, 산업기술정책 등 3개 기관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문제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의 재편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정책실에 따르면,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구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가칭)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야말로 매머드급 ‘거대학문권력’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른바 ‘제2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묻혀 그 심각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을 통합해 출범하게 될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한국학문에 대한 거시적 시각에서 볼 때, 
철회되어야 할 정책 추진이다. 더불어 이와 관련한 심각한 논의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학문의 자율성 
옹호가 한국사회의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amp;lt;/DIV&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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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amp;amp;nbsp;‘(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을 위한 문제의식은 ‘공공기관 선진화와 기구 통폐합을 통한 효율화’, 그리고 ‘신정부 출범 및 
교육과기부 발족’에 따른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지원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정치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외쳐대며, ‘과거 흔적 지우기’에 몰두하는 맥락에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매머드급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그것이 비록 기존 연구관리기관의 통합일 지라도 새로운 조직의 탄생이기에 
‘하나의 성과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일종의 성과주의적 차원에서 조직의 통합을 바라봄으로써, 학문사회가 견지해야 할 
자율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학문 정책이나 학문 기구의 개편이 오로지 새정부 출범이라는 정치 논리와 효율이라는 경제논리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모습을 볼 때, 
학문연구자들은 스스로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학문이 전혀 자율적이지 못하는 상처를 포함하고 있으며, 학문세계가 
궁극의 가치를 향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극심한 좌절감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통합안에는 1977년에 설립되어 31여년의 역사성을 
가진 ‘한국과학재단’, 1981년에 설립되어 27년간 한국학문 진흥의 논리를 개발해 온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인문정신은 과거와 역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한다. 청산하고 재편하려고 칼부터 들이대는 태도에서 인문학을 포함한 학문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읽어낼 수는 없다. 다분히 청산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적 성과를 위해 기획된 듯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은 그 발상부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게다가 통합의 논리도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의 융합연구가 촉진되고, 
기초연구 비중이 높아지며, 연구자의 행정부담이 완화되고, PM의 역할이 강화된다고 한다. 이러한 개선 사항이 왜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통합의 효과로 제시된 사항은 기존 조직 체계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인데, 오직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통합의 논리는 단지 조직의 일원화를 통해 국가 관리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연구 지원을 받는 당사자인 
학문연구자들의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의견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하는 현 상황도 문제가 많다. 수요자 중심의 연구관리 제도를 
확립하겠다는데,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행정기구의 재편에 따른 파장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연구자들에게 재편 이후의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셈이다. &amp;lt;/DIV&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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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시기의 국가 주도의 학문지원정책은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039;에 입각해 
있었다. 대리인 이론은 주당사자(principal)가 대리인(agency)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가시적이기도 하고 비가시적이기도 한 이러한 부가가치는 장기적이면서도 지속적인 투자와 간접화된 개입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학술진흥재단을 포함한 
학문지원시스템은 큰 범주에서는 국가(혹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주당사자’가 ‘대리인’으로 학술진흥재단․한국과학재단을 내세워 진행하는 
학문지원정책이다. 그래서 학술진흥재단 등은 다시 ‘주당사자’가 돼 ‘각 대학’ 혹은 ‘학문연구자’를 ‘대리인’ 삼아 학문의 성과를 의뢰했다. 
서로가 연관돼 있는 이러한 관계는 큰 틀에서 볼 때 학문에 대한 국가의 간접화된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학술진흥재단은 중간자로서 
‘학문연구의 내용에 대한 개입’은 가급적 회피해 왔다. 이러한 합리적 학문개입으로 인해 학문연구자들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시스템에 양가적 감정을 
가져왔다. 학문의 상대적 자율성의 보존하려는 태도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지원 제도라는 것 자체가 학문세계에 대한 개입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지녀왔던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연구자들은 근본적으로 국가기구의 학문영역에 대한 개입을 거부했고, 학술진흥재단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학문세계의 자율성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amp;lt;/DIV&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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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amp;lt;STRONG&amp;gt;국가기구에 의한 학술연구의 종속 가능성&amp;lt;/STRONG&amp;gt; &amp;lt;/DIV&am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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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DIV&amp;gt;하지만,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대리인 이론이 갖고 있던 합리성마저 포기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국가가 
직접 학문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내비춰진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직접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운영에 개입하여 특정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선정에도 개입하려 한다. 즉, ‘(가칭)한국연구재단’의 국가기구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교과부가 ‘연구과제의 조직화’ ‘연구개발 계획서의 검토 및 조정’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마련한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가 ‘(가칭)한국연구재단’에 함께 존재하게 됨으로써, 이공분야의 논리로 인문사회분야 지원시스템을 만들 경우, 국가가 
학술연구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에 대한 인문사회분야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연구주제를 국가기구에서 공모하고, 그 연구팀 선정에 직접 개입하게 될 경우 학문은 도구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학문을 호명할 수는 있다. 이공계 분야에서는 비일비재한 것이 국가기구의 개입에 의한 특정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와 이에 관한 성찰을 통해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향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뤄지는 국가기구의 개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공동체 내의 담론체계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했을 때, 집단적 불행이 따라왔음은 역사적 사실들이 증언한다. 
전체주의 사회는 폭력을 통합 억압으로만 유지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을 합리화한 다양한 학문적 지원 속에서 그 기반을 다졌다. 파시즘 
체제도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데, 그 동의의 저변에는 동원된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뒷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학문지원 체계를 
거대기구로 통합해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amp;amp;nbsp;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lt;BR&amp;gt;‘(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향후 학문연구자들의 학문적 독립성을 훼손할 뿐 만 아니라, 학문에 대한 국가개입이 노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거대학문권력’의 탄생을 예고한다. 국가 기구가 학문을 조정하려는 순간, 그 사회는 정신적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학문의 
자유가 박탈당한 사회는 영혼을 강탈당한 육신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는 내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에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amp;lt;/DIV&amp;gt;
&amp;lt;DIV&amp;gt;&amp;amp;nbsp;&amp;lt;/DIV&amp;gt;
&amp;lt;DIV&amp;gt;* 대안지식연구회의 정치사회비평 지난글들은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amp;lt;A 
href=&quot;http://jihaeng.net&quot;&amp;gt;http://jihaeng.net&amp;lt;/A&amp;gt;)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mp;lt;BR&amp;gt;&amp;lt;/DIV&amp;gt;&amp;lt;/FONT&amp;gt;&amp;lt;/td&amp;gt;&amp;lt;/table&amp;gt;&amp;lt;/HTML&amp;gt;
&lt;/TEXTAREA&gt; &lt;!-- 메일 내용 End --&gt;&lt;!-- //HM_MAILCONTENT --&gt;&lt;!-- 내용 부분 End --&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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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정치-사회비평</category>
			<category>거대학문권력</category>
			<category>공공기관 선진화</category>
			<category>오창은</category>
			<category>학술진흥재단</category>
			<category>한국연구재단</category>
			<author>(지행네트워크)</author>
			<guid>http://jihaeng.net/blog/122</guid>
			<comments>http://jihaeng.net/blog/122#entry122comment</comments>
			<pubDate>Mon, 01 Sep 2008 14:45:4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대안세력은 어디에 있는가?(이영제)</title>
			<link>http://jihaeng.net/blog/121</link>
			<description>&lt;DIV style=&quot;FONT: 10pt 굴림&quot; align=center&gt;&lt;STRONG&gt;&lt;FONT size=3&gt;대안세력은 어디에 있는가?&lt;/FONT&gt;&lt;/STRONG&gt;&lt;/DIV&gt;
&lt;DIV&gt;&lt;br /&gt;&amp;nbsp;&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이영제&lt;/FONT&gt;&lt;/DIV&gt;
&lt;DIV align=center&gt;&lt;FONT size=2&gt;(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lt;/FONT&gt;&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br /&gt;&lt;/FONT&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촛불시위라는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강부자·고소영 내각 임명과 쇠고기 수입개방, 기업 편들기와 공기업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 언론 장악과 사정기관의 종복화, ‘건국절’이라는 이종적 국경일의 도입 시도 등은 여론의 반발을 고려할 때 어느 것 하나 결코 추진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상실한 헤게모니를 상쇄하기 위해 물리력을 노골적으로 동원하는 강수를 두면서 까지도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뒷받침되었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이명박 대통령 추진력의 세 가지 배경&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첫째, 언론·사정기관의 사유화이다. 언론 및 사정기관의 사유화는 일방향적 소통을 강제하기 이전에 양방향적 소통을 차단하고 대항담론 형성 및 담론 형성 네트워크를 통제함으로써 대항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제16대 대선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대거 양성된 보수 네티즌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둘째, 대안 정치세력의 부재이다. 제도정치 영역에서 비보수정치세력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더 나아가 예상가능 기간 동안 중앙정치 영역에서 제도적 대안세력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촛불시위 발생 배경의 하나가 되기도 한 대안 정치세력의 부재는 사사건건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맞닥뜨리는 서로에게 ‘피곤한’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기력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과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셋째, 가장 주요하게 다수의 비동원상태의 유지이다. 참여정부 이후 지속된 각종 선거와 대선과 총선, 교육감 선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보수적 동원이 진보적 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중간층 또는 무당파층의 최소동원 상태만 유지된다면 정권 유지 및 재창출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즉 저항의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것을 여론조사에서만 분석 가능한 잠재화된 상태로 관리하는 것으로 비가시적인 여론의 무시와 가시적 저항에 대한 억압 또는 분리로 나타나고 있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비보수세력의 집권은 여전히 ‘예외상태’&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우측깜박이를 킨 이명박 대통령의 후진은 좌측깜박이를 키고 우회전한 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개혁의 연장선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해 입문했다는 점 이외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절대화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집시법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조금 더 개악되었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불허와 폭력적 진압은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현재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청수 경찰청장, 김종훈 통산교섭본부장 등은 ‘간지나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은 이들이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개혁적 세력의 집권이 예외상태라는 인식을 확고히 했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의 집권이 정상적인 상태이고 개혁적 세력의 집권은 보수세력의 실패와 포풀리즘과 같은 술수에 기인한 예외적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언론․사정기관의 도구화 등은 보수집권이라는 정상상태에 대한 확신이 개혁적 세력 집권이라는 예외상태에 대한 두려움에 비해 월등했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저항의 조직화와 대안의 부재&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이명박 대통령의 독주와 지난 10년간 진행된 개혁의 급속한 후퇴, 그리고 제도정치 영역에서의 개혁-진보라 일컬어지는 세력들의 침체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amp;nbsp; ‘직접행동’과 ‘반 이명박 연대’과 같은 바리케이트 전술,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진지전 등 다양한 형태의 대안의 조직화로 이어지고 있다. 다양하게 조직되는 저항들은 진보세력을 동원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어느 것도 비동원상태의 시민들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시민운동, 대안세력이 아닌 기성정치세력&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새로운 대안으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가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주저했던 시민운동 진영이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면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는 것이 비동원 또는 반동원 상태의 무당파 층에게 어떠한 감동과 동기를 부여할 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시민운동은 이미 대안세력이기보다는 기성정치세력으로 상상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lt;STRONG&gt;기존 정치세력의 분화와 진보-개혁적 재구성은 어떨까?&lt;/STRONG&gt;&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앞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대안세력의 성장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이 가치 없다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세력과 다를 바 없는 구 민주당 세력과 사이비 개혁의 전도사인 열린우리당세력이 합친 민주당은 어떠한 덧칠을 한다고 해도 대안세력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특히 이들의 지리멸렬함은 될 것도 안 되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에 다름 아니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도 현실적인 대안세력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지지’가 보여주듯이 이들의 독자적 성장을 하염없이 기다릴 만큼 국민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대안세력의 성장보다는 오히려 보수세력의 자멸과정에서 구래의 ‘대항세력’이 권력을 획득하는 예외상태가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lt;/FONT&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lt;FONT size=2&gt;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시민운동 세력을 포함한 기존 정치세력을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재구성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기존의 ‘반00’와 같이 타자에 의해 자신을 규정하는 양적인 연합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