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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당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난쟁이입니다

- 용산 참사 200일과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오창은(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현대문학사의 결정적 장면들


한국 현대문학사에는 손에 꼽을 만한 몇가지 인상적 풍경들이 있다. 그 중 몇가지 결정적 장면은 1970년대에 이문구?황석영?조세희가 펼쳐 보였다. 이문구의 「우리동네 김씨」에서 김씨가 민방위 훈련에서 부면장 상대로 권위주의와 강렬한 풍자로 대결하는 장면은 암울했던 시대의 풍경을 민중적 웃음으로 통쾌하게 그려냈다. 황석영의 중편 「객지」의 결말도 숭고미를 자아낸다. 동혁이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고 외치는 결말에서 '절망의 넘어선 희망'을 발견하면, 뭉클해진다.


나는 조세희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려낸 장면이 그 중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난쟁이 가족이 철거 바로 직전에 마루에서 구운고기와 고기국에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철거 직전에 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서 식사를 하는 이 장면은 한국문학사의 가장 비극적이면서 슬픈 풍경으로 꼽을 수 있다.


난쟁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던 지섭은 철거 용역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징적 언어를 내뱉는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년입니다."


지섭의 항변은 '민중의 역사, 노비의 역사'를 압축해 제시하기에,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먹먹해지는 울림을 전한다. '오백 년'의 상징적 언어지만, 거기에는 슬픔?울분?저항?폭력?압제?좌절?재생의 역사가 기입되어 있다. 권력의 아래에서만 삶을 영위해야 했던 민중의 아픔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울림의 크기를 넉넉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수인의 고백


나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이 장면을 지난 6월 수원 구치소에서 수용자들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인권연대에서 주관하는 '평화인문학' 강의에 강사로 참여해 10명의 수용자들과 '인문학적 책 읽기'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책이 텍스트로 선정된 것이다. 한 달 동안 이뤄진 강의에서 나는 누군가와 처지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에 관해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갇힌 자들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고, 아래로부터 삶을 다시 살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수원 구치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경험을 했다. 30대 초반의 한 수용자가 주저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는 지 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소설 속에서 철거를 담당한 '망치를 든 사람들'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경험을 했고 토로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행위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바깥 세상에 있을 때, 구청에서 바로 재개발 업무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했다. 그가 '사색의 공간'이기도 한 감옥에서 '인문학 강의'를 위해 읽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자기 역전(逆轉)'의 경험을 안겨주었던 듯하다. 그는 한 때 자신이 국가기구, 혹은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폭력을 행사하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국가기구에 의해 수인이 되어 갇힌 상태에 있다. 저절로 자신에게 위임되는 줄로 알았던 권력이, 그래서 항상 정당하다고 믿으려고 했던 권력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 고통스러운 역전의 과정이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던 듯하다.


문학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인물과 공감하는 길을 열어 준다. 그래서 인문학적이다. 누군가는 난쟁이 아버지에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섭에 공감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둘째 아들 영호에게 공감할 수도 있다. 그 다양한 길을 문학 작품은 갈무리하고 있어 '타인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해 주고, 읽는 이가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그것이 두려울 지라도, 이성적 이해를 넘어선 깊은 공감이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길인 것이다.



남일당 앞에 선 부끄러움


나도 그 수영자가 겪었던 '고통스런 역전'을 지난 8월 3일에 절절히 경험했다. 6.9 작가선언이 기획한 '용산 릴레이 실천'에 참여해 용산참사의 현장인 남일당 앞에서 8시간여 동안 동료 작가들과 시위를 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현장이 바로 용산 남일당이고, 그 곳에 우리 시대의 참혹한 풍경이 펼쳐져 있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현장에 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발생한 이래, 정부와 서울시는 철저하게 사건을 외면하고, 대화도 거부했다. 이는 지난 80년 광주 대학살 이후 정치권력이 취한 태도와 너무 흡사하다. 외면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망각의 심연에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다. 용산참사와 80년 광주의 대학살은 동일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의 비민주적 치부의 현장이 바로 남일당이고, 용산 4지구이다. 나는 다시 한번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며, 현장에서 이를 확인했다.


나는 레아 호프의 상황실에서 용산 4지구의 풍경을 바라보고,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여하지 않는 공감'이 얼마나 무력한가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두 명의 미국인은 시위를 하고 있는 내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정부에 의해 학살이 자행됐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고 다시 질문했다. 나는 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지난 3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96째였고, 7일이면 고통의 나날이 200일에 접어든다.


한국 민주주주의 짓밟힌 지 200여일에 이르고 있다.


더불어, 우리 모두는 남일당 아래에서 난쟁이가 되어 왜소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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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데기는 가라!: 버려지는 사람들과 새로운 정치

하승우(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신문을 뒤적이기가 무서울 정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배제되어 버려지고 있고, 그 속도마저 계속 빨라지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철거민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동네에서 버려지고 있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해 온 공장에서 버려지고 있다. 농업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농민들은 평생 일궈온 땅에서 내몰리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동안 쥐꼬리만큼 받아오던 복지혜택에서조차 내몰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필요라는 이름 아래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은 인간이 아니라 도구처럼 쓰였다 버려지고 있다. 학력 신장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은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얼마 전 신문기사에 따르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이런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 ‘불법 점거’, ‘폭력시위단체’, ‘떼거리’, ‘무능한 인간’, ‘좌익’, ‘패륜’, ‘매국노’같은 딱지를 붙이며 그런 버림을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21세기에 ‘빨갱이’나 ‘간첩’이라는 말마저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기득권층과 그들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그 기준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이 사회 밖으로 거칠게 내몰고 있다(경찰청은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대응하는 훈련을 하는가 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용산참사가 공권력 발동을 주저하게 만들어 한탄스럽다며 쌍용차 평택공장에 즉각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지 버려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서 더욱더 두려운 건 아니다. 두려운 건 이런 배제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과 이를 바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망이 있다면 버티며 미래를 준비해 보겠지만, 희망조차 꿈꿀 수 없다면 미래는 불가능하다. 앞으로의 일이 이미 결정된 세계에서는 더 이상 희망(希望)이나 미래(未來)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희망의 목표나 기준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목표나 기준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시야가 정치를 청와대나 국회, 몇몇 정당들, 몇몇 시민사회운동단체들로 제한되어 정치의 부정적인 면밖에 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자 시야를 아래로 낮춰 풀뿌리나 지역공동체 차원의 긍정적인 정치를 보려 하면 그런 점은 한국 사회 전체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차원의 정치나 제한된 대안이라 여기는 지역 차원의 정치 모두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의식은 갈증을 호소하며 무작정 사막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좌표가 없기에 헤맨다고 한들 오아시스를 찾을 가능성은 낮고 까마귀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래서 새로운 좌표를 알려줄 새로운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프레임은 무조건 새로운 말을 끌어다 쓴다고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보수정치가 생활밀착형 정치라는 표현을 쓴다고 해서 새로운 프레임을 갖추는 게 아니다. 생태나 평화, 자치같은 말을 정당의 구호로 끌어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 검찰이 ‘공안’이라는 말 대신 ‘민생’이라는 말을 써서 ‘공안정국’, ‘공안부’ 등의 이미지를 바꾸려 해도 그 속성을 바꿀 수 없는 점과 같다. 프레임은 단어가 아니라 관점을 가리킨다. 보는 방법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이 새로운 관점을 갖춰야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상황, 즉 버려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 기득권층의 정치전략이 ‘한 가족’, ‘하나의 공동체’라는 말을 쓰며 사람들을 한데 뭉치려 했다면, 이제 그들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내버리고 있다. 철거민이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순간, 노동조합이 폭력시위단체로 불리는 순간 그들과는 어떠한 타협이나 협상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들은 다시 공동체로 들어올 수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전략은 ‘버림받음’이라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갖춰야 한다. 새로운 관점이라 해서 인터넷과 같은 과학기술에만 의존하거나 과거의 모든 것을 낡은 것으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내가 익숙한 높이와 방향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정파(이념이 아니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그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그렇지 않으면 자기 귀에 익숙한 단어만을 조합해 풀뿌리 민중의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익숙한 오해와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백날 소통을 떠들어 봐도 자신의 오만함과 확신만 더할 뿐이다.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더욱더 많이 듣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고, 정치의 구조 자체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바꿔나갈 때 그 관점은 새로운 이념으로 구성될 수 있다. 어려운 말이나 새로운 말을 쓰며 폼 잡을 게 아니라 낡은 언어라도 그것의 진정성을 보여줄 때 우리는 민중의 가슴과 소통할 수 있다.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을 차근차근 준비하지 않는다면 무너질 사랑탑만 쌓는 격이다.


그리고 그 관점과 이념은 기존과는 다른 정치전략을 가져야 현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시국선언이나 대변형 운동은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이 사회적 포섭전략을 쓸 때에나 힘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을 버리려 하는 지금의 기득권층은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를 뿌려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도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도록 광장만 잘 틀어막고 있으면 된다는 게 그들의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결투쟁’, ‘결사항전’같은 구호도 잘 먹히지 않는다. 그 투쟁의 치열함이나 처절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버려지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사람들의 단결은 그 뒤에 버려지게 될 사람들의 연대가 아니라 그들의 외면이나 냉소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의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이라 기대하는 건 큰 착각이다. 관계가 우리의 희망이기는 하지만 그 희망은 그 관계망이 어느 정도 다져진 뒤에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는 서로의 관계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드러날 수 있다고 미리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정치전략은 버려지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모색할 수 있는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 터전이 국가인가, 지역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우리를 언제쯤 버릴까 가슴 졸이며 그 날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과감히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모색할 양산박을 하나씩 만들어야 희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래서 무한경쟁에서 밀려났기에 버려져야 할 무능한 존재라는 딱지를 스스로 떼어내고 자신을 중요한 정치주체라 여기도록 만들 과정을 만들어 줄, 디딤돌을 놓아 줄 정치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민중은 아우성을 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것이다.


신동엽 시인은 노래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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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독재'를 생각한다(김원)

다시 '독재'를 생각한다



김 원(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민주주의 vs 독재


노무현 사망이후 민주주의, 독재 등 말이 등장하고 있다. '담론' 차원에서.

담론이라는 면에서 독재나 민주주의가 세력관계를 반영한 적이 오랜 되었는데, 좀 새삼스럽다.


그럼 '독재'란 무엇일까?

담론 수준에서 독재는 '군부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이 아닐까? 요즘 보수정당이나 일부에서 자주 쓰는 '소통의 부재'란 아마도 시민사회와 반대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다수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좀 꼼꼼하게 살펴보자면, 이는 시민사회내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변하지 못하는 '이익매개 기능'의 약화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는 곧바로 '정당정치의 미발전'으로 이어진다. 예전 말로 치자면, 민의를 대의제가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되돌이켜 보면 이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질문하면 그 역시 아니다. 포플리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2000년대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고, 시민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독재나 소통 결여란 문제가 제기될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자. MB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사용이 잦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강력하다 등이 이를 보여주는 주된 현상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 정권에도 사회운동 등에 대한 탄압은 존재했고, 억압적 국가기구도 작동했다. 불안정노동, 구조조정, 노사관계로드맵 등을 기억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을 뿐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기구 작동이 이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독재라고 부르는 근거는 아니다. 이는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부르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담론 수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좁혀진다. 다시 1987년 수준의 민주주의로 회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라는 담론을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보면 모든 자본주의 국가와 정권은 독재이다. 반동적 독점자본의 정치적 테러독재 형태를 아주 예전에 파시즘이라 불렀듯이, 자본주의 국가는 모두 부르주아 독재이다. 다만 정권 형태의 차원에서 '누가 집권'했냐에 따라, 반동적 부르주아지냐 아니면 자유 부르주아지냐에 따라 그 형태상 차별성이 나타날 뿐이다. 이런 엄밀한 논의를 떠나서, 담론 수준에서 독재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대중들에게 외치면,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그 민주주의는 87년 제8차 개헌에서 규정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즉 민주주의의 계급성이 아주 쉽게 망각된다는 것이다. 지금 운위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의 정치적 외피로서 민주주의이다. 그 외피에 상처를 내는 반동적 부르주아지들의 지배에 대항하자는 것이 현재 시점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문득 18년전 논쟁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1991년 5월 강경대 군의 테러 치사 사건이후 사회운동은 1달이 넘게 거리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다들 파쇼타도-민주주의를 외쳤지만, 문제는 대안이었다. 에피소드같은 논쟁이었지만, 어느 세력은 '파쇼 타도-민주주의 쟁취'를 외쳤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란 문제가 떠올랐다. 그 안에서도 한편은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다른 한편은 민주주의 임시정부 아니면 과도정부 슬로건을 외쳤다. 적어도 당시 NL이 주장했던 '국회해산-즉각 총선'은 대안이 아니므로, 노동자 권력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에 비해 2009년은 많이 후퇴한 셈이다. 물론 제헌권력, 국민소환 등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논쟁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권력의 항상성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내가 해버린 하나의 이유는 '독재' 란 담론이 지닌 자기 한계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용하더라도 써야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인지되지 않았을 때, 민주주의 투쟁은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억압적 국가기구', 이른바 공권력의 문제다. 일단 전제해야 하는 것은 현재 국가기구의 작동은 80년대적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른바 국가-자본관계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전일화된 상황에서, 공권력의 동원은 과대성장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은 자신의 장기적 정치이익 - 이른바 경제위기 극복이나 사회안정 등 - 을 위하여 공권력의 노골적인 사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총자본과 국가간 이해의 수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MB정권은 자본분파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공권력을 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17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 시절, 이른바 '이완된 독재' 혹은 '시민사회의 팽창' 등이 논의되며, 국가권력과 전면적인 투쟁인 '기동전'이 아닌, 시민사회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포위하고 이들을 장악하는 진지전 논의가 '그람시'를 원용하며 사회운동에 들어왔다. 다만 그때는 그람시를 아주 잘 못 이해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국가=억압', '시민사회=헤게모니'라는 얼토당치 않은 말을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해석했다. 물론 그람시 소개서중에 그런 해석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람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늘 억압적이며, 최종 순간에 자본(총자본)을 방어하기 위해서 강제력을 준비하고 예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며 억압적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작동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현재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은 '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상황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국선언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독재에 맞서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는 이념적인 면에서나, 조직적인 면에서 분화가 공고화된 상태이다. 지금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내 MB정권의 공권력의 과잉 사용과 시민사회내 이익매개 기능의 단절을 비판하며 나온 - 모두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 반대연합이란 의미에서 -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와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진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안이 퇴영적인 만큼 설득력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넓게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혹자는 87년 6월 이전을 회고하며, '좀 더 대중적인 슬로건'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내 존재하는 대항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죽음 곁의 현상에 주목해 보자



추모정국에서 형성된 민주주의-독재 전선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현재 전선이 가진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에 그러하다.  그냥 민주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지에 대해 대중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역시 이 점에서 나는 죽음으로 형성된 추모정국의 생명력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대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죽음과 추모에서 한 발 떨어져서 추모 주위에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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